[글로벌 상업부동산 위기] 상업부동산 위기 뉴욕 현장르포 재택근무 일상화 직장인 안 돌아와 공실률 높아지며 건물 가격 반토막… “美사무실 가치 1조2천억달러 증발”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펜스테이션 앞 오피스빌딩 내부. 수년간 공실이던 이 건물에서는 최근 주거용 아파트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 32번가에 위치한 8층짜리 건물. 30여 년 동안 뉴욕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할인매장 ‘99센트 숍’이 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니 한쪽 책상에 설계도면이 쌓여 있고, 바닥엔 구획이 그어져 있었다. 5층 텅 빈 사무실 역시 책상과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전엔 병원과 로펌, 기업 사무실로 가득 찬 빌딩이었죠.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3, 4년 동안 텅텅 비어 버렸어요. 이젠 주거용 아파트가 될 겁니다.”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기업 PD프라퍼티의 토니 박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사무실로는 수익을 낼 수가 없다”며 “약 5000ft²(약 465㎡) 규모 한 개 층에 방 1개짜리 아파트 8채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 ‘반값 폭락’ 뉴욕 중심가 사무실 빌딩
이 오피스 빌딩의 외관 모습. 한 때 로펌과 병원 등이 입주 했던 이 빌딩은 지난해 팬데믹 이전의 반값 수준인 3700만 달러(약 492억 원)에 팔렸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하지만 팬데믹 이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재택근무로 전환되며 사람의 발길이 끊긴 탓이다. 초기엔 팬데믹이 끝나기만 바라며 버텼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어도 직장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뉴노멀’(새로운 정상) 시대가 도래했다.
이 건물의 대출 은행이 바로 지난해 파산한 시그니처 은행이다. 시그니처 은행을 인수한 NYCB 역시 최근 상업부동산 부실 대출 우려로 올 들어 주가가 54% 폭락했다. 신용등급도 ‘투기 등급’으로 강등된 상태다.
● “美사무실 자산가치 1조2000억 달러 증발”
부동산 몰락은 32번가 빌딩만의 고통이 아니다. 최근 뉴욕시 전역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30개 분량의 사무실이 비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뉴욕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인 ‘플랫 아이언’ 빌딩도 4년의 공실 끝에 최근 주거용 아파트로 전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데이나 피터슨 콘퍼런스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은행위기는 3개 은행의 연쇄 파산 뒤 당국의 개입으로 마무리됐지만, 만약 20개 은행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를 겪는다면 엄청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며 “특히 미 상업부동산은 여기에 투자한 유럽이나 일본 등 해외 은행으로 전염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