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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상징 ‘플랫아이언’ 빌딩도 4년째 공실, 아파트로 개조공사중

입력 | 2024-02-14 03:00:00

[글로벌 상업부동산 위기]
상업부동산 위기 뉴욕 현장르포
재택근무 일상화 직장인 안 돌아와
공실률 높아지며 건물 가격 반토막… “美사무실 가치 1조2천억달러 증발”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펜스테이션 앞 오피스빌딩 내부. 수년간 공실이던 이 건물에서는 최근 주거용 아파트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 32번가에 위치한 8층짜리 건물. 30여 년 동안 뉴욕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할인매장 ‘99센트 숍’이 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니 한쪽 책상에 설계도면이 쌓여 있고, 바닥엔 구획이 그어져 있었다. 5층 텅 빈 사무실 역시 책상과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전엔 병원과 로펌, 기업 사무실로 가득 찬 빌딩이었죠.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3, 4년 동안 텅텅 비어 버렸어요. 이젠 주거용 아파트가 될 겁니다.”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기업 PD프라퍼티의 토니 박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사무실로는 수익을 낼 수가 없다”며 “약 5000ft²(약 465㎡) 규모 한 개 층에 방 1개짜리 아파트 8채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마천루 시대’를 이끌던 미국 뉴욕이 상업부동산 침체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은행을 흔들 만한 위기의 진앙이 되고 있다. 이미 뉴욕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가 상업부동산 부실 대출 위험성을 이유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은 가운데 누가 다음 타자가 될 것인지 구체적인 은행명까지 거론되고 있다.



● ‘반값 폭락’ 뉴욕 중심가 사무실 빌딩


이 오피스 빌딩의 외관 모습. 한 때 로펌과 병원 등이 입주 했던 이 빌딩은 지난해 팬데믹 이전의 반값 수준인 3700만 달러(약 492억 원)에 팔렸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뉴욕 중앙 기차역인 펜스테이션 앞에 있는 32번가 빌딩은 1920년에 지어졌지만 1980년대 보수한 뒤 40여 년 동안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한창때는 층당 월 2만5000달러(약 3321만 원)가량 임차료 수익을 냈다. 박 CE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 매입 제안을 했을 땐, 8000만 달러를 제시해도 건물주가 답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재택근무로 전환되며 사람의 발길이 끊긴 탓이다. 초기엔 팬데믹이 끝나기만 바라며 버텼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어도 직장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뉴노멀’(새로운 정상) 시대가 도래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은 또 다른 변수였다. 대출 이자도 버거워진 이 빌딩은 지난해 2월 5000만 달러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같은 해 3월 상업부동산 위기가 터진 뒤엔 결국 3700만 달러에 팔렸다. 4년 만에 반 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이 건물의 대출 은행이 바로 지난해 파산한 시그니처 은행이다. 시그니처 은행을 인수한 NYCB 역시 최근 상업부동산 부실 대출 우려로 올 들어 주가가 54% 폭락했다. 신용등급도 ‘투기 등급’으로 강등된 상태다.



● “美사무실 자산가치 1조2000억 달러 증발”


부동산 몰락은 32번가 빌딩만의 고통이 아니다. 최근 뉴욕시 전역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30개 분량의 사무실이 비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뉴욕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인 ‘플랫 아이언’ 빌딩도 4년의 공실 끝에 최근 주거용 아파트로 전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뉴욕 부동산 투자사 관계자는 “현재 들어와 있는 교육기관이나 병원, 로펌 등도 계약이 끝나면 공간을 대폭 축소하거나 임차료가 내려간 신축 고급 빌딩으로 옮길 것”이라며 “그나마 아파트 전용으로 변경하는 데 성공한 건물은 다행이다. 규제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아 낡은 빌딩들이 대출 부담으로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세기 뉴욕 번영의 상징인 ‘마천루의 시대’가 저무는 전환점에 놓여 있고, 이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미 전역 상업부동산 공실률은 19.6%로, 조사가 시작된 1979년 이후 가장 높았다. 배리 스턴릭트 스타우드캐피털그룹 CEO는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사무실은 존재론적 위기를 겪고 있다”며 “미 사무실 자산 가치가 1조2000억 달러나 떨어졌는데, 이 손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데이나 피터슨 콘퍼런스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은행위기는 3개 은행의 연쇄 파산 뒤 당국의 개입으로 마무리됐지만, 만약 20개 은행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를 겪는다면 엄청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며 “특히 미 상업부동산은 여기에 투자한 유럽이나 일본 등 해외 은행으로 전염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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