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쪽방촌 주민들을 치료하고 있는 한동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있는 무료치과진료소에서 한동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교수가 쪽방촌 주민들에게 무료 봉사 진료를 하고 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 대다수는 이가 아파도 경제적 부담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리로 인해 치과를 가지 못하고 있다.
쪽방촌 무료치과진료소에서는 경제상황이 어려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3~4번 한 교수와 다른지역 개업의들이 돌아가면서 무료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돈이 없어서 틀니를 못 끼우는 어르신들을 위해선 무료로 틀니를 제작해 제공하고 적응훈련까지 돕는다.
2022년부터 진료를 시작했지만, 한 교수와 의료진들의 진료는 1년 만에 쪽방촌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돈의동 쪽방촌과의 인연 그리고 행동하는의사회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잡은 무료치과진료소.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한 교수와 의료진들의 쪽방촌 의료봉사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을 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동료 의사들의 쪽방촌 주민 의료 봉사를 도왔다.
한 교수와 함께 의대, 치대, 한의대를 다니고 졸업했던 동료 의사들은 의료인로써 의료계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의대 치대, 한의대를 다니던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올바르게 바뀌길 희망했던 일부 학생들이 있었다”며 “당시 우리의 희망에 많은 의료인들도 공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아프고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활동하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행동하는의사회는 2010년 부산 진구에 몸이 불편하고 경제 상황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치과 ‘나눔과열림’을 개원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나눔과열림 개원 과정에서 치료 체계구축에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한 교수의 쪽방촌 의료봉사는 현재까지 이어졌고 2018년 국토교통부가 새로운 쪽방상담소 건물을 건축하면서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치과 진료소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무료치과진료소 설립 기회
최신식 설비가 갖춰진 무료치과진료소.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2022년 한 교수는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서울시와 행동하는의사회 그리고 우리금융그룹의 사회공헌사업을 진행하는 ‘우리금융미래재단’과 같이 쪽방 진료소에 ‘무료치과진료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들었다.
한 교수는 제안을 바로 승낙했다. 그는 행동하는의사회와 서울시, 우리금융미래재단의 협의 하에 쪽방상담소 5층에 치과 진료소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쪽방 주민을 위한 무료치과진료소인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2022년 12월부터 문을 열었다.
1년간의 성과
지난 12월 열린 무료치과진료소 성과보고회.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한 교수는 지난해 12월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성과보고회를 열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쪽방촌 주민들의 치과 진료 성과는 물론 주민들을 상대로 치아 건강관리 교육과 상담 사례들을 발표했다.
한 교수는 “치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칫솔질을 비롯한 구강건강 관리를 잘해 충치와 잇몸병 등으로 인한 치아 상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1년 동안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치아 건강 관리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성과보고회에서 “그동안 아무도 제대로 된 칫솔질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치아 관리가 쉽지 않았다”며 “한 교수와 의료진들이 치료가 끝난 뒤에도 계속 불러다 전문가 칫솔질 교육을 시켜주니 너무도 고맙다”며 감사 표시를 했다.
다른 쪽방촌 주민들도 한 교수와 의료진들이 치료에 중점을 둔 진료가 아닌 예방에 중점을 둔 진료를 펼쳐 뜻깊었다는 의견을 냈다.
쪽방촌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의 의미
환자의 상태를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한동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오른쪽).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한 교수는 돈의동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를 의료봉사 현장과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연구 현장으로 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치료 위주의 서비스다. 환자가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주체적인 건강을 지키자고 하는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많이 없다”며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주민들이 건강에 대한 주체적인 의지를 기를 수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이어 “쪽방촌 주민들의 경우 치과 치료 서비스에 대한 문턱이 높았다. 한 달 동안 공공근로 일자리를 통해 80~100만 원을 버는 것이 대다수인 사람들에게 치과 진료와 예방은 차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더 큰 병을 막기 위해서는 치료 후 지속적인 구강 건강관리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치과 진료 뿐만 아니라 이런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쪽방촌 주민들의 주체적 의지를 길러주면서 건강 자존감까지 높여주기 위한 의료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꿈꾸는 미래
쪽방촌 주민들의 치과 진료를 마친 한동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한 교수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로서 지금의 치과의료 체계를 걱정한다. 그는 “치과의사 없는 지역인 무치의촌이 80% 이상이었던 1970년대 당시 정부는 당장 진료를 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절실했기에 1980년대까지 치과대학 정원을 3배로 증가시켰다”며 “하지만, 치과대학 정원이 늘어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무치의촌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시절의 치과대학 교육과 비교해서 얼마나 양질의 21세기 치과대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치대 교육과정에서 임상 실습이 충분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치과대학들이 무료치과진료소와 같은 지역사회 의료기관에 학생들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다른 나라 국가의 치대생들은 치과대학병원 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의 진료소(아웃리치 클리닉)에 파견해 임상 실습을 진행해 경험을 쌓게 한다”며 “한국의 치과대학들도 이런 지역사회 의료 기관에 교수와 학생들을 파견해 교수의 지도하에 다양한 1차의료 임상실습 기회를 갖고, 환자들의 치과진료와 교육 및 상담을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새로운 진료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시와 우리금융미래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역에 무료치과진료소를 추가로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서울 지역의 치과대학들이 의료인력 제공 주체로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
그는 “서울역에 진료소를 만들려고 하지만 진료를 할 수 있는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가 부족한 상태다. 모교인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교육기관, 치과의료인들이 여기에 참여하면 가장 좋은 지역사회 치과의료 모범사업 사례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 임상교육과 지역사회 봉사, 사회 공공선을 행한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