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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연’ 간첩단 피고인들, 선고 이틀전 유엔에 망명 신청 논란

입력 | 2024-02-15 03:00:00

3명, 16일 1심 선고 앞두고 돌연 요청
5차례 법관기피-8차례 변호인 교체
29개월간 재판 끌며 모두 보석 석방
“유엔, 재판 개입 안해… 여론전” 분석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 3명이 1심 선고를 이틀 앞두고 돌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에 정치망명을 신청했다. 이들은 재판 기간 중 5차례나 법관 기피신청을 하면서 재판을 지연시켜왔다. 급기야 망명 신청까지 하자 법조계에선 “전례 없는 재판 지연 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은 이와 무관하게 예정대로 16일 오후 2시 1심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재판에 넘겨진 지 2년 5개월 만이다.

● 5차례 재판부 기피에 망명 신청까지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 3명은 14일 오전 기자들에게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한국 정부의 부당한 인권탄압과 정치적 박해에 대해 6일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특별절차에 긴급구제 신청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30여 년간 한국 정부로부터 감시, 협박, 간첩조작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았고 간첩조작 시도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피고인들은 2021년 9월 16일 구속 기소된 지 4개월 만에 1차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다. 기각되자 항고, 재항고 하면서 2개월이 지연됐다. 그러다 2022년 3월 법관 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되자 같은 해 9월 2차 기피신청을 했다. 역시나 항고, 재항고를 반복했고 6개월간 재판이 지연됐다. 이후엔 배석 판사를 상대로 기피신청하는 수법 등으로 모두 5차례나 지연 전술을 펼쳤다. 지난달 29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청주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승주)는 “피고인 측의 기피 신청은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호인 교체 꼼수도 썼다. 이들은 국선변호인을 포함해 총 8번의 변호인 사임계를 내면서 기록 검토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재판을 지연시켰다. 29개월 동안 재판이 이어지면서 피고인 3명은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들은 2017년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이적단체인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결성해 국가기밀 탐지와 국내 정세 수집 등의 안보 위해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 유엔은 재판 개입 권한 없어
이들이 신청한 망명 절차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인권보호제도다. 주제별 인권 전문가들에게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진정을 보내 개입을 요청하는 절차다.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판단되면 공개 성명을 발표하거나 해당 정부에 긴급조치를 요청할 수도 있다. 주로 중동·아프리카 등 분쟁 지역 국가의 인권 문제나 아동, 난민, 장애인, 인신매매, 고문, 원주민 권리 침해 등 인권 침해 사안을 조사한다.

그러나 형사사법 절차가 보장된 국가에서 재판 중인 사안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엔 특별절차는 피고인들에게 법적 구제장치가 보장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개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3국 망명 지원 역시 유엔 권한 밖의 일”이라며 “국내에서 형사소송법상 가능한 모든 지연 절차를 쓴 뒤에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는 국제기구의 인권침해 조사 제도까지 활용해 여론전을 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받던 피고인이 망명 등을 국제기구에 요청했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1심 재판만 2년 넘게 지연시켜 온 이들이 선고가 임박하자 돌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반복적인 법관 기피신청과 변호인 교체 등으로 재판 지연을 초래하면서 권리를 악용했다”며 각각 징역 12∼20년을 구형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