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고봉밥 두 그릇을 비웠다. 솜씨 좋은 큰형수가 만들어 온 양념게장이 매콤하니 맛있었고 막내 누나가 한 잡채도 감칠맛이 났다. 올해 아흔이 된 엄마는 전라도가 고향임에도 음식 솜씨가 형편없는데 조기구이만큼은 기막히게 잘한다. 따끈하게 나온 조기 몸통을 젓가락으로 부드럽게 가른 후 하얀 속살을 김 폴폴 나는 흰밥에 올려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우리 집은 보기 드문 대가족. 나는 3남 3녀 중 늦둥이 막내인데 각자의 배우자와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이도 제각각인 조카들까지 합하면 거실에 큰 상을 두 개나 차려도 다 앉을 자리가 없다. 이미 결혼해 딸, 아들을 낳은 조카도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나는 막내 할아버지. 매년 반복되는 풍경임에도 영 실감이 나지 않아 “내가 할아버지인 게 말이 되느냐?”며 웃는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장모님 댁에서도 밥을 맛있게 먹었다. LA갈비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기도 했다. 역시 이야기꽃이 피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K장녀. 1980년대 이 땅의 장녀들은 모두가 서울로 올라와 밥벌이를 찾아 흩어졌는데 구로공단과 식모를 구하는 부잣집,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가 3대 직장이었다고. 올 초 큰 병치레를 한 장모님은 한층 나아진 모습이었지만 고독의 그늘도 공존하는 듯 보였다.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에게 지금은 할머니가 세뱃돈을 주지만 나중에는 너희가 할머니 용돈도 드리고 내복도 사다 드려야 하는 거라고 말해 줬다. 집에 어른이 있어 따뜻한 밥이 나오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명절. 나이 들어 밥상머리에 앉으니 부모는 그 존재만으로 많은 걸 느끼게 하고 가르쳐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