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前의원 등 내세워 투자 홍보 수천만원씩 넣었다가 피해 속출 GDG-W코인 등 고소 고발 잇따라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등 유명인을 간판으로 내세운 ‘골든골(GDG) 코인’의 홍보 이미지. 독자 제공
“코인에 관해서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천수 씨(43)는 1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최근 투자사기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가상자산 ‘골든골(GDG)’ 코인에 대해 이 같은 입장문을 게시했다. GDG 코인을 운영한 업체가 이 씨 등 유명인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았고, 이 씨가 여기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자 이를 반박한 것. 경찰은 이 씨가 코인 투자자 모집 등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씨를 믿고 업체에 돈을 맡겼다”는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유명인을 앞세운 ‘스캠(사기) 코인’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스포츠 스타 합류’ 얘기 믿고 투자”
1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김포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고발된 GDG 코인 운영업체 대표 김모 씨와 관계자 최모 씨를 조만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경찰은 김 씨 등이 2021년 3월경부터 GDG 코인 투자 명목으로 수십 명에게서 약 30억 원을 받고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고발장을 접수해 지난해 1월경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이 업체는 GDG 코인에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참여한다는 취지로 홍보하며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 유모 씨(32)는 “GDG 코인의 공식 사이트에 이 씨가 이사로 적혀 있었고, 다른 2002년 월드컵 멤버들도 사업에 합류할 거란 (업체 측) 말을 믿고 6000만 원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지난해 5월 다른 투자자가 ‘원금 5000만 원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패소해 배상 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 씨는 “(김 씨가) 유소년 축구 대회 개최를 제안해 그에 한해서 초상권을 쓸 수 있게 해줬는데 그 이후로도 나를 홍보에 활용했다”며 “이후 ‘(내 사진을) 내려달라’고 항의했고, 실제로 협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결과 범행에 가담한 혐의가 없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최 씨는 13일 본보 통화에서 “나도 (김 씨에게) 속았고 공범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취재팀의 해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 “美·英처럼 유명인의 가상자산 홍보 규제해야”
유명 아이돌 출신 가수 A 씨는 스캠 코인 의혹이 제기된 또 다른 가상자산 B 페이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12일 “저는 B 페이와 아무 관련이 없고 홍보대사에 위촉된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유명 배우 C 씨는 자신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한 업체가 코인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자 “가상자산이 아닌 그룹 광고인 줄 알고 (모델)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일반 투자자로선 가상자산의 내재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워 유명인을 내세운 홍보에 휘둘리기 쉽다. 이에 가상자산 홍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고 현장에 적용할 필요가 있지만, 국내엔 관련 가이드라인이 없다.
반면 해외에선 가상자산 관련 유명인 홍보를 규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국회는 지난해 3월 인플루언서가 정부 허가를 받지 않는 기업을 홍보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길 시 징역 2년형과 벌금 3만 유로(약 4303만 원)에 처할 수 있다. 영국에선 당국의 승인을 받은 사람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가상자산을 홍보할 수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해 3월 가상자산을 홍보하면서 그 대가를 밝히지 않은 연예인들을 사기 혐의 등으로 제재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 발행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유통에 초점을 맞춰 규제가 이뤄지다 보니 엉터리 코인을 누구나 발행하거나, 심지어는 발행도 안 하고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