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계 브라질작가 댄 리, 韓서 개인전 옹기-짚-효소 등 활용 설치작품 선봬 흙서 새싹 자라는 등 희망 느끼게 해
인도네시아계 브라질인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댄 리의 개인전 ‘상실의 서른여섯 달’ 전시장. 한국의 옹기, 짚, 삼베와 국화를 이용한 설치 작품이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강황으로 노랗게 염색한 장막을 걷어내고 들어가면 옹기와 짚, 삼베와 밧줄이 서로 얽혀 있는 광경이 드러난다. 천장에서 옹기까지 드리워진 삼베 천 가운데엔 흙이 채워져 있고, 바닥에 놓인 옹기 뚜껑 위엔 물이 찰랑인다. 쌀과 누룩이 익고 있는 옹기를 엮은 밧줄을 따라 눈길을 옮기면 천장에 매달린 국화 다발이 보이고 흙, 누룩, 국화의 냄새가 섞여 감각을 자극한다.
인도네시아계 브라질 출신 작가 댄 리(36)의 한국 첫 개인전 ‘상실의 서른여섯 달’의 풍경이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와 한옥에서 열리는 전시는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 두 점을 선보인다.
항온 항습 등 작품 보존을 위한 깨끗한 환경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미술관에 곰팡이, 효소, 버섯 종자 등을 재료로 활용해 ‘작은 생태계’를 만들면서 작가는 최근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짚풀 공예와 장례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또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정관 스님을 만나 함께 보낸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수년간 죽음에 관한 의식을 연구해 왔다. 그간 그가 보았던 의식들은 슬픔이나 상실에 집중한 반면 정관 스님을 통해 애도가 ‘마무리’의 과정임을 알게 됐고, 그런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리는 전시장은 슬픔보다 희망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옹기부터 지푸라기까지 어느 하나도 홀로 놓인 것 없이 모두가 연결돼 있다. 삼베 천에 가득 찬 흙에서는 새싹이 자라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버섯도 돋아날 예정이다. 죽음처럼 혼자라 느껴지는 극단적인 순간에도 사실은 미생물을 비롯한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한다. 5월 12일까지. 5000∼1만 원. (3월 7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