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단체관광객들이 9일부터 12일까지 3박 4일 패키지 여행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2020년 코로나 19 발생 이후 북한을 여행한 첫 외국인들이다. 97명의 단체 여행객에 포함된 러시아 국영 매체 보스토크메디아 소속 기자가 ‘특파원의 눈으로 본 북한의 신기한 모습들’이라는 제목으로 북한 관광 체험기를 영상으로 다뤘다. 평양 시내와 원산 스키장을 둘러보았다고 하는데 이중 사진 촬영 관련된 몇 가지 특이점이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을 좀 해보고자 한다. 우선 15일 우리나라 보도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지난 9일 평양에 도착한 러시아 단체 관광객/ YTN 캡쳐
▷김일성·김정은 부자의 동상 촬영과 관련해 3개 수칙이 있었다.
우선, 측면이 아닌 정면을 촬영해야 한다. 둘째는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양손을 옆에 두는 엄격한 자세’를 취해야 하며 셋째, 사진 속에서 동상의 팔과 다리 등 신체가 잘리면 안 된다고 기자는 전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 있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유일한 관광지는 주체사상탑 꼭대기였다. 여기서 탁 트인 평양 전망을 찍는 것은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동자와 농부, 군인과 군사시설에 대한 촬영도 금지됐다“
4년 만에 관광객들이 찾아온 것은 북한으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고립되지 않은 정상국가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데다 외화의 실핏줄이 돌 수도 있기 때문이다. 3박4일 일정의 1인당 관광 비용은 750달러(약 100만원)로 알려졌다. 게다가 러시아는 최근 급속히 북한과 가까운 관계를 복원하고 있는 혈맹이다. 러시아와 북한 관광은 2023년 9월 열린 김정은과 푸틴의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됐다. 다음달 8~11일, 11~15일에도 러시아 관광객들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한 권력이 러시아에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가 인민들의 환영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왜 저렇게 찍으라고 하는 걸까?
내가 2003년 평양을 취재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건물 안에 있는 김부자 그림을 왼쪽 사이드에서 촬영했더니 안내원이 사진을 지우라고 했다. 신체의 비율이 왜곡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이드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피사체도 잘 보이면서 피사체 뒤의 맥락도 함께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한 장의 사진에서 주제와 배경을 다 보여주는 효율적인 앵글이 사이드에서 찍는 사진이다. 그런데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몸과 얼굴이 왜곡되어 보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이해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가이드라인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엄격한 자세를 취하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위대한 분들의 동상이니까 예의를 갖추라는 의미일까? 처음에는 아마 그런 뜻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상 앞에서 양손을 모으고 찍는 기념사진은 북한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만 확인시킬 뿐이다. 예외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동상 앞을 지키는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엄격한 자세를 관광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세계가 이어져 있는 시대이다. 기발한 생각을 하는 젊은 외국인이 김부자 동상 앞에서 ‘창의적인’ 포즈를 취한 채 사진을 찍고, 그걸 SNS에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전 세계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것이고 그에 대한 상부의 문책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어제와 똑같은 사진이 오늘도 반복되어 촬영되고 기록되는 게 안전할 것이다. 똑같은 사진에는 어차피 똑같은 댓글이 달릴거고 그렇다면 그날 동상 앞을 지켰던 자기에겐 특별한 문책이 따르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노이즈가 없는 하루, 월급장이들의 어쩌면 평범한 바램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10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아마추어 골프대회에 출전한 호주 폴로 선수 모건 루이그(오른쪽)와 에번 셰이가 2016년 만수대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모건 루이그 인스타그램
흥미로운 점은, 김정은 시대가 되면서 할아버지 아버지때와는 달리 클로즈업된 사진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은 아웃포커스되고 김정은만 부각시키는 방식의 촬영법이 반복되고 있다. 미니멀한 앵글을 좋아하는 지금의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김정은 사진에서만 이런 촬영법이 통용될 뿐, 동상을 관리하는 현장에서는 옛날에 내려온 지침이 반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주체사상탑에서만은 촬영을 불허한 이유는 뭘까?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70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추모비다. 엘리베이터로 150m까지 올라갈 수 있고 평양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다. 외국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본다는 것은 공격한다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체를 다 보여주는 사진에 대한 공포가 있다. 북한이 자기들의 인공위성을 띄우면서 해상도 낮은 지구 사진을 자랑하는 이유 역시 자신들도 외부의 적들을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한국 사진기자가 찍은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 동아일보 DB
▶ 동상 앞에서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는 날은 언제 올까?
구글에서 다 검색되는 평양 전경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북한의 가이드는 언제 사라질까? 북한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진이 밖에서 볼 때는 경직되고 오히려 이상한 사진으로 보이고 있다. 사진이 시작된 것은 한국이나 북한 모두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서울과 평양에서는 해방 전 이미 사진가 그룹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분단이 되면서 각각의 방식으로 사회와 사람들을 기록해오고 있다. 같은 카메라지만 남북한이 다른 방식으로 사진이 표현되고 있다. 남북한 사진의 시작은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