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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뺨치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AI 시대 온다

입력 | 2024-02-16 15:12:00


“11시간 비행 끝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어.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 얼굴에 드러날 거 같은데, 조언 부탁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니콜라스 히에로니무스 로레알 CEO가 로레알의 챗봇 ‘뷰티 지니어스’에 던진 질문이다. 히에로니무스 CEO의 질문에 뷰티 지니어스는 우선 로레알의 아이세럼 제품을 추천하더니 이어 좀 더 구체적인 피부 진단을 위한 사진을 요청한다.

로레알이 올해 CES에서 공개한 '뷰티 지니어스' / 출처=로레알


로레알의 ‘뷰티 지니어스’는 오픈AI의 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AI 열풍이 어떻게 변화하고 나아갈지 보여주는 사례다. 산업과 일상 각 분야에 생성형 AI 활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특정 전문 분야에 최적화 된, 이른바 도메인(분야) 특화 AI가 떠오르고 있다.

챗GPT와 같은 챗봇이 범용 거대언어모델(LLM)에 기반하고 있다면, 도메인 특화 AI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집중적으로 학습시키고 미세 조정을 거친 모델을 사용한다. 가령 로레알은 37개 국에서 뷰티 사업을 펼치며 2018년부터 쌓아온 10PB(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뷰티 지니어스에 녹여냈다.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마구잡이로 학습한 기존 LLM 기반 AI보다 답변 정확도를 높일 수 있고, 환각 현상도 줄일 수 있어 각종 전문 분야에서 AI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전문 분야에 한해서는 규모가 더 큰 모델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소형 모델로도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기에 최근 AI 업계의 대세로 떠오른 온디바이스 AI로도 구현이 용이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가 아닌 기기 자체에서 구동되는 AI를 말한다. 인터넷 연결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며, 민감한 기업 내부 자료나 개인 정보가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되는 일도 없어 보안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출처=셔터스톡


국내 AI 스타트업은 업스테이지는 학습 플랫폼 ‘콴다’를 운영하는 매스프레소, KT와 함께 수학 도메인 특화 AI인 ‘매스GPT(MathGPT, 가칭)’를 개발해 선보이기도 했다. KT가 인프라를, 콴다가 수학 특화 노하우와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스GPT는 언어 모델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MATH’, ‘GSM8K’ 등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직 영역도 넘본다. 법률 분야가 대표적이다. 리걸테크 기업 인텔리콘은 지난해 법률추론 AI 상담 챗봇인 ‘로GPT’를 선보였다. 300만 건 이상의 법령, 판례, 법률논문, 사건케이스 등을 LLM에 학습시켰다.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도 GPT4를 기반으로 법률 AI ‘빅케이스GPT’를 개발 중이다. ‘빅케이스GPT’는 지난해 열린 제12회 변호사시험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률 53.3%를 달성해 33%에 그친 기존 GPT4보다 높은 성적을 거뒀다. 로앤컴퍼니는 고도화 과정을 거쳐 AI 법률 비서 서비스 등에 빅케이스GPT를 활용할 계획이다.

의료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구글의 의료 특화 생성형 AI인 ‘메드-팜2(Med-PaLM2)’는 미국의 의사면허시험(USMLE)에서 통과 기준치로 알려진 60점대를 훌쩍 넘은 86점을 기록하며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스타트업들도 각 사업 영역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한 특화 AI 서비스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리테일테크 분야 스타트업인 넥스트페이먼츠는 오픈AI의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스마트 상점 솔루션을 결합해 ‘오더 어시스턴트’, ‘스토어 매니지먼트 어시스턴트’ 등의 AI 비서 개발에 나섰다. 특히 스토어 매니지먼트 어시스턴트는 유동 인구 정보, 매출 정보 등 매장 내외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점주들에게 매장 운영과 관련한 분석과 조언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넥스트페이먼츠의 스토어 매니지먼트 어시스턴트 / 출처=넥스트페이먼츠


이처럼 특화 AI가 부상하면서 이를 학습시킬 때 필요한 데이터나 개인정보 관련 규제 빗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AI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개인정보를 비롯한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인데, 클라우드를 사용할 경우에는 국외이전을 위한 동의 및 인증 등 절차나 과정이 까다로워 스타트업 입장에선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공공 분야에서도 업무용 단말기와 인터넷용 단말기를 분리하도록 한 현행 망 분리 규제 또한 데이터 활용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데이터 중요도에 따라 유연한 망 분리 규제를 적용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 망 분리 규제는 기업 상황이나 데이터 중요도 등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돼 디지털 전환과 AI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정부 또한 이런 비판 목소리를 수용해 제도 개선 움직임에 나선 모양새다. 망 분리 규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도 개선 검토를 지시하면서 지난달 범정부 태스크포스가 꾸려져 개선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특화 AI 개발과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규제 혁신을 비롯한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과기정통부는 앞선 1월 ‘초거대 AI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통해 법률, 의료, 심리상담, 미디어·문화, 학술 분야에서 AI 일상화와 전문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13일에도 법률, 교육, 의료 등 5대 분야 AI 일상화에 예산 7737억 원을 투입하고, 데이터, 규제혁신, 인재양성 및 금융‧세제 지원 등 AI 혁신이 신속하게 확산될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T동아 권택경 기자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