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서울시, 로봇친화도시 추진 약자 위한 돌봄 로봇에 투자 집중… 혁신기술 보유 기업에 실증 공간 제공 검증 마치면 현장 보급까지 지원 ‘배뇨 처리 로봇’ ‘검체 이송 로봇’ 등 도입 땐 돌봄-의료 인력 부족 해소 의료계 “실제로 현장서 활용하려면 의료 수가 현실화가 먼저 이뤄져야”
지난달 31일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김라윤 양이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보행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혁신 로봇 기술을 개발한 기업에 서울 전역에서 성능 시험을 할 수 있는 기관 등을 제공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립어린이병원. 윤주영 물리치료사가 보행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있는 김라윤 양(9)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윤이는 손으로 등을 받쳐주는 윤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치료실 밖으로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이날 라윤이는 치료실부터 병원 복도까지 왕복으로 약 280걸음을 걷는 연습을 했다.
앞으로는 키가 작은 아이들도 보행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서울시가 ‘로봇 친화도시 서울’ 정책으로 돌봄로봇 및 약자 기술의 개발부터 성능 시험, 실생활 활용까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 서울 곳곳을 혁신기술 성능 실험 장소로 활용
라윤이가 착용한 신형 웨어러블 로봇도 이런 정책을 토대로 올 1월 말부터 12월까지 한 해 동안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기기 성능을 검증하고 시험해 보기 위해 도입됐다. 라윤이는 30여 분 동안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일어서기, 계단 오르기, 평지 보행 등 다양한 종류의 보행 치료를 받았다.
라윤이가 이전에 활용했던 ‘로코멧’은 치료 목적에 맞는 가상 현실이 모니터에 나타나면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에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반면 새로운 웨어러블 로봇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힘이 조금 더 있는 환자가 착용하고 실제 보행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다. 장거리 보행부터 경사지, 계단 등 다양한 상황을 만들고 훈련하면서 동기 부여를 해주는 셈이다.
지난달 31일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보행 치료를 마친 김라윤 양(9)이 혼자서 한발자국씩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다. 이날 라윤이는 약 30여분 간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일어서기, 계단 오르기 ,평지 보행 등 다양한 종류의 치료를 받았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치료는 착용한 사람이 해부학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잡는 데 부족한 힘을 로봇이 보조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기자가 로봇을 입고 일어서자 골반이 뒤로 빠지지 못하도록 로봇이 계속 앞으로 밀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쾃 자세를 할 때도 허벅지에 힘이 빠져 주저앉지 않도록 로봇이 허벅지를 밀어내는 저항감이 느껴져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 기업이 실증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의료용 장비는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로봇을 어떻게 치료에 활용해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데다, 기존 업무 방식을 새롭게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런 로봇 혁신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전역을 실증 공간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엔젤로보틱스의 하지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처럼 혁신 기술을 개발한 기업에 서울시가 실증할 수 있는 공간과 그에 필요한 비용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서울 소재 스타트업, 중소기업이라면 실증 공간과 예산을 지원받는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경우 실증 공간만 제공한다.
● 약자·돌봄 로봇, 개발부터 보급까지 지원
배뇨자동처리로봇
● 맞춤형 소프트웨어 개발도 지원
이송 로봇은 이렇듯 기송관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약품이나 검체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병동에서 이송해야 할 물품을 서랍에 넣어 이동할 위치를 선택하면, 로봇이 스스로 경로를 찾아 이동한다.
13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 관계자가 검체·혈액 이송로봇에 검체병을 넣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런 기술을 개발하려면 병원 내부 지도를 학습시켜 최적 경로를 파악하고, 엘리베이터와 출입 시스템 정보 등을 로봇과 연동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리드앤은 이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9월 말까지 서울의료원에서 실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와 함께 실내 지도를 개발해 로봇에 표준화된 위치 정보를 연동할 수 있는 사업도 시도하고 있다. 한신동 리드앤 이사는 “지금까지는 로봇별로 카메라 등을 이용해 천천히 실내를 촬영해 만든 내부 지도를 활용해야 해 지도 작업에만 로봇 한 대당 최소 일주일이 걸렸다”며 “표준화된 실내 지도를 로봇이 서버를 통해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의료진도 로봇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야간 약제 배달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6∼10번 정도는 검체나 약품을 전달하기 위해 센터에서 본관을 오갔다”며 과거 “코로나19 검사의 경우 사람이 직접 전달해야 해 매번 응급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런 어려움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의료 수가 현실화 없이 로봇 보급 어려워
다만 이렇게 개발된 의료·돌봄 로봇들을 현장에서 활용하려면 의료 수가 현실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치료용 로봇의 경우 건강보험 수가 혜택을 받기 어려워 실제 도입을 망설이는 병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실증하고 있는 하지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도 보행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어 1만 원대의 의료 수가가 적용되고 있다.
송우현 서울시립어린이병원 진료부장은 “로봇 기계 값은 차치하더라도 치료를 위해 필요한 공간이나 인력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의료 현장에 보급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선 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가 체계가 새롭게 마련돼야 로봇 보급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