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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오징어’는 옛말… 경북에선 한라봉-천혜향이 ‘주렁주렁’

입력 | 2024-02-17 01:40:00

[위클리 리포트]새로 쓰는 우리 농수산 지도
기후변화로 농수산물 산지 급변
포항서 한라봉-바나나 등 재배… 2100년엔 강원서만 사과 날 듯
동해안은 방어가 대표 어종으로… 작년 기준 오징어 어획량의 3배
새 먹거리로 아열대 작물 주목… 여름 사과 ‘골든볼’ 등 상품 개발






기후변화로 포항에도 한라봉 주렁주렁


기후변화로 국내 주요 산지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제주도 특산물로 유명한 한라봉은 이제 경북 포항에서도 재배된다. 대표적 사과 산지인 경북은 아열대기후에 진입해 2070년대엔 사과 재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한 농장. 이곳에서는 2000년부터 제주도 특산물로 유명한 한라봉을 수확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약 3300㎡(1000평) 규모 농지에서 6∼7t을 수확했다. 한라봉뿐 아니라 천혜향과 레드향으로도 품종을 늘렸다.

지난달부터 농장에서 운영하는 아열대 과일 농장 체험 프로그램은 하루 40∼50명이 찾을 정도로 지역 어린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해당 농장을 운영하는 한치용 씨(48)는 “포항은 일조량이 좋아 한라봉이 15브릭스(Brix·당도 측정 단위) 이상 단맛을 낸다”며 “초봄과 한겨울을 빼곤 날이 따뜻해 보온 커튼 정도 외에는 난방도 필요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 특산물 지도가 바뀌고 있다. 사과로 유명했던 경북이 제주 특산물인 한라봉이나 바나나의 새로운 산지로 떠오른 게 그런 사례다. 최근 들어 잦아진 불볕더위와 해수온 상승 등 기후 변화의 영향이 크다. 한반도가 더워지자 특정 농산물이나 수산물의 위도 한계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6일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현재 경북 22개 시군 중 18개 시군에서 망고나 공심채(空心菜) 등 21종의 아열대 과일·채소를 기르고 있다. 포항시만 하더라도 한 씨 농장을 포함해 12개 농가에서 한라봉과 바나나, 애플망고, 백향과(패션프루트) 등 아열대 과일을 재배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이달에 처음으로 레몬을 수확한 사례가 나왔다.




● ‘청송 사과’,‘나주 배’ ,‘제주 감귤’ 사라지나


지난달 경북 포항시의 ‘포항한라봉농장’에서 진행한 한라봉 수확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가 한라봉을 따고 있다. 포항시청 제공

30년 새 대구·경북 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은 반 토막이 났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경북 사과 재배 면적은 2만151ha(헥타르)로 30년 전인 1993년(3만6021ha)보다 44.1%나 줄었다. 농가 인구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도 한 원인이지만 기후 영향이 더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북 평균기온은 지난 45년간 0.63도 상승해 아열대기후로 변화하고 있다.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동해안 지역 4개 시군은 2022년에 이미 월 평균기온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이상으로 아열대기후에 진입했다. 사과는 연평균 기온이 8∼11도인 비교적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북부 온대 과수다. 반면 강원에선 사과 재배 면적이 30년 새 3.5배로 늘었다. 강원의 사과 재배 면적은 1993년 483ha에서 지난해 1679ha로 247% 증가했다.

대구·경북 지역은 여전히 전국 사과 재배 면적의 6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진행된 농촌진흥청 기후 변화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결과 2070년대엔 경북에서 사과 재배가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사과는 현재 국내 과일 재배 농가의 16.8%를 차지하고 재배 면적도 가장 넓지만,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2100년에는 강원 일부에서만 재배될 것”이라고 했다.

재배지 이동은 사과뿐만이 아니다. 통상 농작물은 연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재배 가능지역이 위도상 81km, 해발 고도는 154m 올라간다. 기상청 조사 결과 1970년대 영상 12.1도였던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2020년대 들어 영상 13.1도로 1도 상승했다.

전남 나주시에서 유명한 배는 2050년대부터 국내 재배 적지(適地)가 급격히 감소해 2090년대에는 거의 없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포도는 재배 적지가 현재 충청·전북 등 중부지역에서 2070년 강원 산간 지역으로 바뀔 전망이다.

경북 청도군 특산물인 복숭아도 2090년대에 들어서면 강원 산간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단감은 경남 창원 김해에서 중부 내륙으로 주산지가 점차 바뀌고 있다. 강원 산간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배추는 2081년경부턴 국내 재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산 인삼’ 등 충청권 대표 특산물인 인삼도 강원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도 강원 홍천 횡성 연천에서 인삼 농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90년대부터 인삼은 강원 일부 지역에만 남고, 제주 감귤은 자취를 감출 것이란 예측 결과도 나와 있다.




● ‘동해안 오징어’는 옛말 이젠 ‘방어’가 대세


수산물이라고 다를 리 없다. 요즘 동해안 대표 어종은 오징어가 아니라 방어다. 제주 대표 어종으로 알고 있던 바로 그 방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어업생산동향조사 품종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1456t(잠정 추정)으로 2022년(3657t)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은 2020년 8691t, 2021년 6232t 등 매년 급감하고 있다. 2000년대까지 강원 동해안의 연간 오징어 어획량은 2만 t이 넘었는데, 십수 년 사이 1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반면 방어는 급등세다. 지난해 강원 동해안에서 잡힌 방어는 4186t(잠정 추정)으로 20년 전인 2003년(426t)과 비교해 10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오징어 어획량의 3배에 가깝다.

오징어는 대신 서해안에서 득세하고 있다. 지난해 국립수산과학원이 집계한 결과 국내 전체 오징어 어획량에서 서해안 비중은 2015년 15%에서 최근 50%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서해안은 다른 주요 어종까지 몰리고 있다. 지난해 서해안(경인·충청·전북) 위판량은 15만4368t으로 동해안(강원·경북)보다 50%가량 높았다. 10년 전인 2013년(서해안 10만3284t·동해안 14만4427t)과 비교하면 상황이 역전됐다.

이 또한 수온 상승 영향이 크다. 방어는 겨울철 적정 수온을 찾아 남쪽으로 무리지어 이동하는데, 최근 들어 동해가 서식에 적합해진 것이다. 최근 40∼50년간 국내 바다 수온은 1.4도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0.5∼0.7도)과 비교해도 가파른 추세다.

고수온 현상의 원인으로는 저위도로부터 열을 수송하는 대마 난류가 강해지고 여름철 바닷물을 뒤섞는 태풍이 줄었다는 점이 지목된다. 최근 폭염이 잦아 여름철 표층이 너무 달궈진 것도 한몫한다. 지난해 여름철 동해 표층 평균 수온은 25.8도로 전년(23.5도)보다 2.3도 상승했다. 평년(23.7도)과 비교해도 2.1도 높다.

김중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는 “해수온이 0.1∼0.5도만 변해도 생태 특성에 큰 영향을 준다”며 “국내 해안의 경우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화되고 구로시오·대마 난류 등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 열대과일도 ‘메이드인 코리아’


기후 변화로 인한 특산물 지도 변화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우선 아열대 농수산물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단 점은 소비자들이 반길 만한 일이다. 농촌진흥청은 과거 30년 동안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했던 키위를 2090년이면 강원 일부를 제외한 전국에서 기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각 지자체에서는 기온이 높아진 만큼 미래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아열대 농작물을 재배할 경우 농가 경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전남도는 2020년 4월 전국 최초로 아열대 농업 육성 및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실제 전국 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 4126ha 중 2453ha(59%)가 전남에 있다.

다만 기존 주산지 농어민들은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동해안 근해 어선들은 부진한 조업량 탓에 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아예 오징어 어선을 포기하겠다며 정부에 감척을 신청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강원에서 오징어잡이 어선 18척이 감척을 신청했다. 지난해 상반기(1∼6월) 감척 신청은 4척에 불과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오징어 어획 부진 장기화로 올해 어업 수익은 적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생산량 저조로 인해 오징어 소비자 가격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가에서는 새로운 상품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경북 군위군에서 육성하고 있는 노란 여름 사과 ‘골든볼’이 대표적이다. 골든볼은 착색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황색 사과 중에선 높은 당도를 보인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성 과일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송진호 기자ji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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