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에 걸친 美 공중화장실 역사… 계급-젠더 등 사회적 측면서 다뤄 도시 빈민 자선사업 취지로 지어져… 관리 안되자 부유한 지역으로 이동 최근 떠오른 ‘성중립 화장실’ 논쟁… 지역의 빈부 따라 설치 여부 갈려 ◇화장실 전쟁/알렉산더 K. 데이비스 지음·조고은 옮김/388쪽·2만1000원·위즈덤하우스
저자는 미국 공중화장실 20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화장실은 젠더와 계급 등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정치적 공간이었다고 주장한다. 오랜 투쟁 끝에 성 정체성과 장애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사진은 2022년 3월 16일 성공회대가 국내 대학 최초로 조성한 성중립 화장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뉴스1
“화장실? 그 어떤 작은 주제에도 지적 우주의 한 부분이 정말 담겨 있나 봅니다.”
저자가 두 세기에 걸친 미국 공중화장실의 역사를 연구하겠다고 하자 인터뷰 대상이던 어느 연구원이 건넨 말이다. 그러나 화장실은 결코 작은 주제가 아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하는 저자는 성별 또는 계층에 따른 공중화장실의 사용 행태를 통해 한 사회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환영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일상 공간 이상의 의미를 화장실이 갖고 있다는 것. 저자는 공중화장실 관련 문서 7238건과 19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화장실 담론’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20세기 초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고용주들은 성별로 분리된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는 여성들의 거센 요구에 직면했다. 결국 188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공중화장실 성별 분리를 의무화하는 주법을 처음 통과시켰고, 이어 1889년 뉴욕주도 비슷한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1978년 여성 전용 화장실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고용주들이 고발을 당할 정도로 화장실을 둘러싼 성차별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저자는 성별 분리 화장실에는 여성의 몸을 성적 약탈의 대상으로 보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20세기 후반 트랜스젠더 운동과 더불어 성별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성소수자나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보조인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성별 구분 표지판을 없앤 화장실이다. 그러나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인해 성중립 화장실 설치는 반대에 부닥쳤다. 저자는 성중립 화장실도 지역의 빈부 격차와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개조나 설치에 드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저자는 그럼에도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꾸준히 진보했다고 말한다. 1990년 미국 장애인법 시행을 계기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성중립 화장실 설치론자들은 ‘가족용 화장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용적인 공간을 만들거나, “우리 조직이 더 돋보이기 위해 이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변을 설득했다. 그 결과 학부생들에게 성중립 기숙사 및 화장실을 제공한다고 보고한 대학의 수가 2009∼2016년 7년간 4배 이상 급증했다.
한국과 미국의 상황을 비교하면 한층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미국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2022년 3월 성공회대에 이어 12월 KAIST에 성중립 화장실이 생긴 직후 찬반 논란이 벌어졌고,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폐쇄 요청 민원이 잇따랐다. 하루에 몇 번이고 용무를 보기 위해 드나드는 일상의 공간조차 젠더와 계급의 불평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