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신대동∼옥천 구간, 호남선 오정동∼가수원 구간 철도를 조속히 지하화하고 상부는 상업·주거·문화가 융합된 공간으로 바꿔 나가겠다.” 전국 각지를 돌며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대전에서 한 약속이다. 경부·호남선 철도가 대전을 동서로 나눠 도시 발전을 저해한다며 ‘철도 지하화’ 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에 맞먹는 대전∼세종∼청주 간 ‘CTX(충청권 광역철도)’ 조기 착수 계획도 꺼내 놨다.
▷정부 여당과 야당이 4·10총선을 겨냥해 ‘받고 더블로’식 경쟁을 벌이면서 철도 지하화는 가장 뜨거운 공약이 됐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전국 주요 도시 철도 지상 구간 지하화 방침을 밝힌 데 이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경기 수원에서 철도 지하화를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경인선, 경부선 등 9개 철도 노선과 수도권 도시철도 5개 노선, 수도권 GTX 3개 노선 등 총 259km 구간을 모두 지하로 넣겠다”며 세게 맞불을 놨다.
▷국토교통부는 이미 추진 중인 수도권 GTX A, B, C노선을 21∼70km씩 연장하는 한편 D노선(김포·인천∼팔당·원주), E노선(인천∼덕소), F노선(대곡∼의정부∼덕소∼수원∼부천종합운동장)을 신설하는 계획도 공개했다. 전국의 지자체들과 협의해 대전과 같은 방식의 지방 광역급행철도도 추가로 놓겠다고 한다. 전국 아파트값이 12주 연속 하락세인데도 ‘철도 호재’를 맞은 관련 지역의 집값은 꿈틀대기 시작했다.
▷철도 지하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프로젝트’다. 센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노후 철도시설 상부에 인공용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고급 주상복합시설을 지었다. 그런데 1991년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 폭 100m, 길이 3km 용지를 만들고 그 위를 개발하는 데 30년 넘게 걸렸고 10년은 더 지나야 완성될 예정이다. 돈도 돈이지만, 수백 km 철도를 지하에 놓겠다는 여야의 공약이 모두 실현되는 걸 보려면 현 세대는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철도 공사를 평생 참아내야 할 모양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