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페이스 아쉬워…파리 올림픽에 올인”
1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배영 200m 결선에서 한국수영 사상 최고인 5위를 기록한 이주호. 대한수영연맹 제공.
“사상 최고 성적을 낸 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다만 저도 모르게 ‘오버페이스’를 한 게 아쉽습니다.”
1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배영 200m 결선 레이스를 마친 이주호(29)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이날 이주호는 결선에 오른 8명 중 1분56초38의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이번 도하 대회에서 이주호는 한국 배영 선수로 처음 결선무대에 오른 데 이어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준결선 전체 3위를 기록해 결선 3번 레인에 선 이주호는 8명 중 가장 빨리 출발(반응시간 0초54)해 첫 50m 구간에서 26초76, 2위를 기록했다. 그동안 세계수영선수권에서 나온 경영(競泳) 메달은 모두 자유형에서 나왔는데, ‘비 자유형’ 부문 첫 메달이 기대됐다. 하지만 100m 구간에서 5위로 처진 이후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3개월 전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인 1분56초05보다도 0.33초 느렸다.
이주호는 “준결선에서 운이 좋아 3위(1분56초40)를 했다. 하지만 결선에 오른 선수들 기록이 대부분 ‘1분56초대’에 몰렸을 만큼 치열했었다. 결선에서 (조바심을 내지 않고) ‘물을 가볍게 타야지…’라고 생각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마다 훈련할 때 자신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힘을 고르게 분배하기 위해 각 구간마다 목표기록을 정해둔 뒤 이 기록을 내기 위해 수없이 반복 훈련을 한다. 국내대회를 치를 때 지도자들이 제 페이스로 하고 있는지 구령을 통해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관중이 붐비는 국제대회에서는 지도자의 구령이 전달되지 않기에 선수 스스로 계산하면서 레이스를 치른다. 대회 당일 컨디션이 좋아 전 구간에서 고르게 목표치 이상의 기록을 내거나, 온 힘을 쥐어짜야 할 마지막 구간에서 목표 이상의 뒷심을 발할 때 개인 최고기록도 나온다.
다만 레이스 초반 목표기록보다 지나치게 빨랐다면 선수 본인이나 관계자 모두 오버페이스라고 표현한다. 오버페이스가 날 경우 결국 레이스 후반 힘이 빠져 평소보다 기록이 처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내 한 지도자는 “오버페이스가 나면 마지막 힘을 내야 할 최종 구간에서 (힘이 빠져) 몸이 말을 안 듣는 나머지 선수가 당황해 하며 순간 심리적으로도 무너진다”고 말한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당시의 황선우(21)도 자신의 첫 국제대회 개인전을 치르던 당시 이 오버페이스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올림픽 자유형 200m 결선에서 첫 100m 구간을 세계기록을 깰 것 같은 페이스로 역영한 황선우는 이후 150m구간부터 힘이 빠져 순위가 1위에서 7위로 밀렸다. 이후 황선우는 “150m 지점 즈음부터 주변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빨라) 옆에 아무도 없는 것 같더라. 순간 당황스러웠고 리듬도 깨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남자 배영 200m 결선에서 2위를 한 뒤 전광판을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이주호. 뉴시스
올해 29세인 이주호는 앞서 올림픽에 1번, 아시안게임에 2번 출전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지금까지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 세계수영선수권도 이번이 4번째다. 22살이던 2017년 처음 한국기록을 세운 이주호는 지난해에도 자신이 보유한 한국기록을 깨는 등 ‘20대 중반이 지나고 나면 꺾인다’는 불문율을 깨고 있었다. 불과 3개월 전 세운 자신의 한국기록을 0.07초만 앞당겼어도 세계선수권 메달도 가능했다. 이번 세계수영선수권 남자 배영 200m 입상자의 기록은 모두 ‘1분55초대’고 3위에 오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피터 쿠체(20)의 기록이 1분55초99다.
올림픽이나 세계수영선수권 결선에 오른 적이 없어 이번이 ‘첫 결선’이었던 이주호는 ‘값진 경험’이라고 했다. 이주호는 “(파리 올림픽 준비로) 몇몇 주요 선수들이 빠진 대회라고는 하지만 입상자들의 기록만 보면 이전의 다른 대회와 비교해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대회에서 내가 처음 결선에 올랐고 많은 동기부여가 됐다. 20대 마지막에 맞을 가장 큰 대회인 파리 올림픽에서 모든 걸 걸고 새 역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