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한반도와 대만의 냉전사
지난달 대만 총통 선거에서 반중, 친미 성향의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달 들어 최대 명절인 춘절에도 항공기와 해군 함정, 감시 풍선 등을 대만 영토 쪽으로 보내는 등 군사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양안전쟁이 터지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는 그저 남의 일이 아닌 한반도 안보 위기와 직결되는 요인입니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전쟁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증원 전력인 주일·주한미군 재배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두 개의 전선(two-front war)을 노리는 중국이 북한에 남침을 요청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인 이유는 무엇이고, 양안전쟁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요(Oriana Skylar Mastro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 논문 등 국내외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운명공동체로 엮인 한국과 대만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민진당 라이칭더(왼쪽)와 부총통 당선자 샤오메이친. 친미, 반중 성향인 이들의 당선으로 양안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AP=타이베이
1948년 11월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중국공산당이 대만을 점령할 경우 미국의 안보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하는 내용의 보고서(NSC-37)를 작성합니다. 중공이 대만을 점령하면 미국 안보에 불리하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었습니다. 반면 미 군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켜야할 정도로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높지 않다고 봤죠.
정부 내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초까지 트루먼 행정부는 ‘무개입 원칙’을 고수합니다. 미국이 중국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또 대만으로 쫓겨간 국민당 정부에 대해서도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거였죠. 이는 마오쩌둥의 승리가 대세로 굳어진 가운데 혈맹인 영국이 중공을 승인하면서 미 의회와 경제계, 학계, 언론에서 중공 정권 승인론이 힘을 얻은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1950년 2월 미국 정보기관은 대만 국민당 정권이 그해 12월을 넘기지 못하고 중공에 점령될 거라는 비관적인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트루먼 정부는 중공과의 관계 개선을 준비하면서 국민당 정부와 관계를 단절하는 방안을 검토했죠.
하지만 그해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전쟁이 터지고 한 달 뒤 대만 국민당 정부에 긴급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원조계획을 수립할 조사단 파견을 제안합니다. 미국 입장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갑자기 높아진 거죠.
그러나 결국 미국은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1년 5월 대만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고문단을 보내는 등 군사원조 계획을 수립합니다. 단,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외교 방침을 유지하기로 합니다. 이에 따라 당시 미 국무부는 국민당 정부에게 명확한 안보공약을 제시하는 걸 거부하죠. 대만 외교부 장관이었던 예궁차오(葉公超)가 미국이 결국 국민당 정부를 포기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한 이유입니다.
中, 대만 점령하면 美 본토 위협 ↑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직후 중국군이 벌인 대만 봉쇄 군사훈련. 동아일보DB
특히 일부 군사전략가들은 대만의 군사적 가치가 상상 이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이 미소 냉전 당시 유용하게 활용한 SOSUS(수중음향감시체계)로 현재도 중국군의 필리핀해 및 태평양해 진출을 효율적으로 막고 있는데,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면 이것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SOSUS는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해저에 일렬로 깔아놓은 무수한 음파탐지기(소나)들을 말합니다. 미국은 SOSUS를 유럽의 북해와 대서양, 대만해협 등에 매설했는데 소련 핵잠수함이 기지를 떠난 직후부터 소음을 탐지하는데 성공할 정도로 높은 성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SOSUS로 위치가 드러난 잠수함은 대잠초계기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그야말로 먹잇감에 불과하게 됩니다(잠수함의 최대 강점인 잠항성을 무력화시키는 무기인 셈입니다.)
중국이 대만해협을 가로질러 태평양까지 진출하면 미국도 산 넘어 불구경 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중국이 대만 점령 후 저소음의 전략핵잠수함(SSBN)을 대만 기지에 전진 배치하면 미국의 대잠 전력에 노출되지 않고 미국 전역으로 핵미사일을 쏠 수 있는 해역(태평양)까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와 함께 필리핀에 기지를 두고 해·공군을 운용하는 미국의 작전능력을 직접 견제할 수 있게 됩니다.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실시 중인 중국군 동부전구. 동부전구 웨이신
미국의 안보 공약이 신뢰성을 잃으면 동맹국 간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의 딜레마’에 빠지기 쉽습니다. 동맹을 맺고도 안보위기 시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는 위험이 방기라면, 연루는 동맹으로 인해 원치 않는 갈등(전쟁 등)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양자 동맹에서 상대적 약소국이 방기의 위험을 두려워한다면, 상대적 강대국은 연루의 위험을 두려워하죠. 이는 미국이 한국, 일본, 호주 등과 맺은 동맹에 균열을 일으켜 중국의 도발 가능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만 점령이 군사전략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찰스 글레이저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대만 점령이 중국의 군사력이나 전력투사 능력을 크게 증가시킬 거라는 근거가 없다”며 대만 포기를 주장했습니다.
병참기지로서 한반도의 역사
경기 평택시에서 훈련 중인 주한미군 전술차량. 양안전쟁 시 주한미군 일부 전력은 대만으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동아일보DB
이미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양안전쟁 시 주한미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논의를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학계 일각에선 한국이 중국과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정보수집이나 탄약 공급, 비전투원 소개와 같은 후방지원에 나서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병참기지로서 한반도의 역할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일본은 명나라를 치기 위한 길목이자 병참기지로 조선을 활용하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현대사로 좁혀 보면 국공 내전이 대표적입니다. 1940년대 후반 2차 국공 내전 당시 북한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군의 든든한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했죠. 마오쩌둥이 대만 수복을 사실상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데에는 국공 내전 당시 깨달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 양안 위기와 맞물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이전을 한미 양국이 재검토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양안전쟁시 주한미군 재배치로 인해 생기는 대북 억지력의 공백을 한국이 더 많이 메우는 방향으로 작전통제권 이전을 추진해야한다는 겁니다. 이는 한국의 자체 국방력이 강화되면 중국의 대만 침공을 틈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죠.
단, 이 같은 조치가 북한의 핵무장과 일본의 군비 확장이 본격화 된 상황에서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건 우려스럽습니다. 미중갈등이 심화된 가운데 이 같은 움직임이 양안전쟁의 가능성을 오히려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국력에 비해 소극적인 외교 행태를 보여왔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 일본, EU 등이 추진한 러시아 원유상한제에 적극 동참하지 못한 게 대표적입니다. 최근 미중갈등과 더불어 일본이 전수방위를 폐기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양안전쟁에 적극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참고 문헌]
-Brendan Rittenhouse Green, 〈Then What? : Assessing the Military Implications of Chinese Control of Taiwan〉 (2022, International Security)
-Oriana Skylar Mastro, 〈How South Korea Can Contribute to the Defense of Taiwan〉 (2022, The Washington quarterly)
-장수야, 〈한국전쟁은 타이완을 구했는가〉 (2022년, 경인문화사)
“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 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