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웡카’에서 웡카(티모테 샬라메)가 초콜릿 가게를 열 꿈에 부풀어 즐겁게 춤추며 노래하는 장면. ‘웡카’는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모티브로 한 스핀오프 영화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국 소설가 로알드 달(1916∼1990)이 쓴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1964년)은 1971년 처음 영화화됐다. 로알드 달은 그 영화를 몹시도 싫어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제목. 영화는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국내 개봉명 ‘초콜릿 천국’)이다. 영화 제목에선 주인공 판잣집의 가난한 꼬마 찰리 대신 제과업자 웡카의 이름이 들어간다. 식품회사 퀘이커가 원작 소설에서 착안해 초콜릿 ‘웡카 바’를 만들어서 팔 참이었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영화 제작비 전액인 300만 달러를 댔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제품을 광고하려는 목적인 만큼, 영화 제목에도 제품명처럼 웡카가 들어가야 한다고 못 박았다. 당시 침체기였던 영화업계는 온갖 자산을 팔던 시점이라 후원인의 입김은 절대적이었다. 졸지에 웡카 영화가 된다.
임현석 DX본부 전략팀 기자
영화는 원작자 의사와 무관하게 각색이 이뤄졌다. 소설에서 웡카는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느닷없이 토끼춤을 추는 반면, 와일더가 연기한 웡카는 첫 등장 신에서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뚝이면서 걸어 나온다. 그러던 그가 앞으로 넘어질 것처럼 휘청이다가 앞구르기를 하자 아이들이 환호한다. 시작부터 아이들을 속이는 깜짝 공연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속내를 알 수 없고 의뭉스러운 인물을 묘사하고자 와일더가 제안한 각색이다.
달은 이런 잡다한 각색을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영화는 개봉했다. 그는 영화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TV에 나오면 그냥 꺼버렸다. 007 시리즈 ‘두 번 산다’ 각본을 쓴 그였지만, 정작 자기 작품 영화화엔 인색해졌고 영화 산업에 대해서도 냉소했다. 원작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영화는 겨우 손익 분기점을 맞췄다.
그러나 작품의 운명이란, 인생처럼 모를 일이다. 이 인기 없던 가족 영화는 1980년대 들어 재조명된다. 당시 가정용 비디오 기기 보급과 함께 어린이 가족 영화 붐이 일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크리마스 시즌 재방송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다.
최근 개봉작 ‘웡카’는 이 1971년작 영화의 프리퀄이다. 달 소설에서 캐릭터만 빌려오고, 스토리는 모두 새롭게 창작된 것이다. 주인공 웡카(티모테 샬라메)와 메인 캐릭터 움파룸파(휴 그랜트) 모두 1971년 영화 작품과 복장이 유사하다. 약간은 슬퍼 보이는 웡카의 표정도 해당 작을 따른다. 또 그때와 같은 노래를 부른다. 달은 웡카가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도 싫어했지만, 이제 더 이상 소설만이 원작도 아닌 것이다. 작품의 운명이란 이처럼 묘하다.
이처럼 최근작은 소설보다 영화 원작을 취하지만, 그럼에도 원작자 달이 추구해온 작품 세계를 섬세하게 반영한다. 자기가 능숙한 줄 알지만 실은 엉망진창인 어른과 책벌레로 야유받지만 실제로는 세상사에 통달한 어린이의 대립 구도는 달의 말년 수작인 ‘마틸다’를 떠올리게끔 한다. 달은 오 헨리처럼 ‘트위스트 엔딩’(소설 막바지에 이뤄지는 반전)의 달인이었는데, 선한 얼굴을 하고서 남을 속이거나 제 꾀에 넘어가서 골탕먹는 악인들을 자주 등장시키곤 했다. 웡카 영화 속 악인인 여관 주인은 그의 단편 소설 ‘하숙집 여주인’(번역 소설집 ‘헨리 슈거’에 수록)이 연상된다.
이번 작 웡카는 원작의 결함을 보완하기까지 한다. 소설에선 초콜릿을 먹으려고 공장에 와서 일하던 움파룸파 나라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희생자처럼 보였다면 최근 개봉작에선 웡카와 동등한 위상을 지닌 활극의 주역이 된다. 이쯤 하면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작품을 둘러싼 서사까지도 함께 성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성장은 응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