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처 적어 이용 어렵다” 지적에 심의 없이 ‘일반음식점’ 모두 등록 업체 52만곳 일일이 점검 역부족 보호자 부적절하게 사용할 우려도
13일 오후 9시 반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골목. 거리를 가득 메운 담배 연기 사이로 술집 종업원들이 호객하고 있었다. 이들 뒤로 붉은색 조명에 ‘19금’ 음악을 크게 튼 힙합클럽과 라운지바 등이 즐비했다. 술집 안에는 한껏 취한 채 춤추는 이들도 있었다. 취재팀 확인 결과 이 골목의 술집 클럽 등 27곳 중 14곳이 서울시 결식아동 급식카드 ‘꿈나무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었다. 취약계층만 사용할 수 있는 해당 카드를 엉뚱한 매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 심의 절차 없애자 선술집-위스키바도 등록
업주 대다수는 “꿈나무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된 줄 몰랐다”고 밝혔다. 강서구에서 포차를 운영하는 정모 씨(33)는 “여긴 술집인데 어떻게 결식아동이 올 수 있냐”고 말했다. 인근에서 위스키바를 운영 중인 다른 업주는 “관련 안내나 공문이 없어 몰랐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2020년경 대다수 지자체가 아동급식카드 가맹점 등록 방식을 ‘신청-심의제’에서 카드사 자동등록제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적어 카드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업체를 일단 모두 등록하고, 적합하지 않은 업체들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 이에 따라 전국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은 2018년 3만3009곳에서 2022년 52만4143곳으로 1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일반음식점 가운데 사실상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 형태로 운영되는 점포가 많은데, 이를 일일이 모니터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자치구마다 부적절한 가맹점을 모니터링하는 인력을 1명씩 두고 있는데, 1명당 최대 4000여 곳의 가맹점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구조다.
● “부적격 가맹점 솎아내야”
아동급식카드를 술집에서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이 앞으로 발급된 아동급식카드를 보호자가 대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국회에 제출한 아동급식카드 결제 명세에는 ‘××××포차’ ‘이자카야××’ 등 술집이 사용처로 줄줄이 나온다. 경기의 한 술집에선 하루 한도(2만 원)를 의식한 듯 40초 간격으로 두 카드로 계산한 기록도 나왔다.
국회 등에서 부실 관리 문제를 지적하자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각 시도로부터 분기별 점검 실적을 보고받기로 했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실적에 따른 평가는 예정된 게 없다”며 “보고 의무가 만들어진 것은 각 지자체에서 좀 더 신경을 써 달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대로 방치되더라도 불이익이 없는 것이다.
아동급식카드 시스템을 지원하는 카드사에서 특정 키워드를 필터링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완전하진 않다. 업체 이름에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탓이다. 서울시, 강원도 등 지자체에 관련 시스템을 지원하는 신한카드 관계자는 “맥주 등 일부 단어는 이미 필터링을 통해 제외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 부정사용자들로 인해 정책이 위축되고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며 “가맹점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