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2월 초 프랑스 파리 출장을 다녀왔다. 유럽 출장은 많았지만 파리에 며칠 머무르는 건 처음이었다. 파리에 대한 내 인식도 단편적이었다. 패션, 예술,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정도. 프랑스어권 출장은 묘하게 불편했기 때문에 프랑스어권에 대한 약간의 반감도 있었다. 이번 파리 출장에서 그 모든 반감이 사라졌다. 짧은 자유시간에 본 어느 박물관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간 파리 국립공예기술박물관은 1794년 개관한 유럽 최고(最古) 과학 박물관 중 하나다. 과학 장비, 소재, 건설, 통신, 에너지, 기계, 운송이라는 7분류 체계를 따라 인류(와 프랑스)의 기술 발전이 설명되며 그를 증언하는 물건들이 전시된다. 전시 분류와 구성부터 소장품의 세세한 설명까지 모두 아주 질 높고 세련된 교양이다. 라부아지에의 진품 실험 기구, 초창기 기계식 시계, 아치 교량 원리 설명 모형, 르노 F1머신 엔진이 기술 문명의 성배처럼 놓여 있다.
지금 열리는 특별전시는 충격적일 만큼 멋있다. 전시 이름은 ‘무한한 탐험(Explorer l’infiniment)’. 탐험의 역사와 개념에 대한 전시다. 전시는 탐험을 5가지 키워드로 정의한다. 먼 것, 깊은 것, 작은 것, 큰 것, 먼 옛날. 분류에 따라 초기 극지방 탐험 풍경화가 걸리고, 해저 탐사선이 전시되고, 원자 탐험과 천문학의 세계를 보여주고, 고고학 체험학습 세트를 만들어 둔다. 탐험을 정의하고 소개하는 교양 수준과 그를 전시하는 미감이 모두 굉장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덜 세련되게도 모국의 대학 취업률이나 이공계 기피 같은 현실을 잠깐 떠올렸다. 요즘 한국은 불신과 피로와 ‘가성비’ 정서가 너무 강해서 배움의 기쁨이나 탐험의 가치 같은 건 덜떨어진 소리 취급을 받는다. 몸 멀쩡하고 머리도 좋은 고학력 도련님들이 ‘전문직이 돈 잘 벌고 안정적인데 교수나 회사원은 힘드니까 이쪽도 지원해 달라’ 같은 글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올리기도 한다. 그런 한국에서 살아가다 파리의 수준 높은 전시장에 오니 이런 게 교양의 초격차였다.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모르던 것을 아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늘 뭔가를 관찰하고, 더 정밀한 관찰을 위해 관찰 도구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인류는 발견을 통해 기술과 지식을 쌓으며, 그 아름다운 도전과 진보의 총합이 문명이다.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멋진 전시로 표현하는 게 ‘프렌치 시크’인가 싶다. 홍보 같은 말로 글을 맺지만 나는 프랑스로부터 빵 한 조각 안 받았고, 전시에 너무 감화되어 읽지도 못하는 프랑스어 도록을 잔뜩 사느라 수하물 추가 요금을 낼 뻔했다. 전시는 5월 14일까지. 매주 첫째 일요일은 무료 입장이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