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화국’서도 반복되는 특사 남발 사면법으로 기준 정해야 남용 막을 것
장택동 논설위원
독일에는 절대왕정 시대에 “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라는 법언이 있었다고 한다. 법 위의 존재였던 절대군주가 자신이 내린 벌을 스스로 거둬들일 권한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 오래다. ‘법 앞에 평등’인 세상에서 통치권자가 자의적으로 재판 결과를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사면권은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선진국에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이른바 ‘법치주의의 자기 교정’이라는 측면에서 근거를 찾는다. 아무리 법을 치밀하게 만들어도 완벽하지는 않으므로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바로잡기 위한 최후의 장치라는 뜻이다. 일종의 ‘필요악’인 만큼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실시되는 특사는 이런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6일 설 특사를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2년이 안 되는 동안 4차례 특사가 단행됐고, 대상자는 6000명이 넘는다. 수사하고 기소해 범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게 업무인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포진해 ‘검찰 공화국’으로 불리는 현 정부에서 특사가 잦은 것은 뜻밖이다. 정부는 대부분 생계형 사범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사면이라고 설명한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횟수가 너무 잦고 대상이 과다하다.
이전 정부들도 별반 차이가 없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정식 특사가 총 41차례 이뤄졌다. 연평균 1.2회꼴이다. 이를 통해 특별사면·감형·복권된 사람만 20만 명이 넘는다. 거물급 정치인이나 전직 고위 관료는 ‘왜 특사를 못 받았는지’가 화제에 오를 만큼 사면이 당연시된다. 특사가 “형사 사법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무소불위의 파옥(破獄) 도구”(이승호 건국대 교수)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처럼 무분별한 특사가 가능한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헌법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통령이 사면을 하도록 돼 있고, 학계에서는 적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로 사면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그런데 현 사면법에는 특사의 절차만 규정할 뿐 기준과 조건 등 실질적 내용은 없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사면법 개정안은 50건이나 발의됐다. 특사의 절차를 강화하고 대상을 제한하자는 내용이 다수다. 부패사범 선거사범 등은 특사에서 제외하고 특사 전에 대법원장의 의견을 듣거나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 형기의 일정 부분을 복역해야 사면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됐다. 하지만 대부분 별 논의 없이 흐지부지 폐기됐고 통과된 개정안은 3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의미가 있는 내용은 2007년 개정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신설한 것 정도다. 그나마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에는 구속력이 없어서 사면권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남발되는 사면은 사법 정의의 핵심인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지금껏 봐왔듯 대통령 스스로 사면권을 자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입법을 통해 사면권 남용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