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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5년 걸릴 반도체공장 20달 만에 지은 日… ‘빨라야 8년’ 굼뜬 韓

입력 | 2024-02-20 00:00:00

15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정에 들어선 대만 반도체 기업 TSMC 공장 전경. 양배추밭 옆에 지어진 공장 외벽에 일본 현지법인명 ‘Jasm’이 적힌 간판이 걸렸다. 이곳에는 소니, 도쿄일렉트론 등 일본 유수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몰려 있다. 구마모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재건’의 목표를 내걸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대만 TSMC 구마모토 공장이 24일 준공한다. 2021년 10월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2년 4개월, 2022년 4월 착공한 지 1년 10개월 만이다. 지난해 말 이미 시험 제작에 돌입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0개월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지은 것이다. 규제가 많고 보수적인 일본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전격적인 속도다.

당초 5년은 걸릴 것으로 봤던 공장 건설은 계획 수립부터 인프라 조성, 착공, 준공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통상 2년이 걸리는 계획 발표 후 착공까지의 기간을 6개월로 단축했다. 365일 24시간 쉼 없이 공사해 공사 기간을 2개월 더 줄였다. 지방자치단체는 공업용수나 도로 정비 등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일본 정부도 투자금의 40%인 4760억 엔(약 4조240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지원 사격을 했다.

반도체 부활을 선언한 일본은 민관이 힘을 합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외국 기업이 짓는 공장에도 세금과 지원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50년 이상 묶어 왔던 규제를 풀어 농지와 임야에도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다 한국, 대만에 밀려 변방 신세가 된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절치부심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속도전에서 한참 뒤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2월 부지가 선정됐지만 아직도 제대로 삽을 뜨지 못했다. 당초 2022년에 공장 건설을 시작하려 했지만 지역 민원, 토지 보상, 용수 공급 인허가 등에 번번이 발목이 잡혀 다섯 차례 이상 착공이 연기됐다. 내년에 착공해 2027년 가동 예정이니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8년이나 걸리는 셈이다. 삼성전자 평택공장도 송전탑 갈등에만 5년을 허비했다.

한국 반도체가 처음부터 이렇게 느슨했던 것은 아니다. 41년 전 삼성이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을 때 단 6개월 만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마쳤다. 정부와 기업이 절박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매달렸기에 가능했다. 지난달 정부는 2047년까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662조 원을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실행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과감한 투자와 한발 빠른 집행이 뒷받침돼야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