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싫은 소리 못하는 ‘착한’ 부모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성애에는 기본적으로 죄책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예부터 우리나라 어머니는 ‘굉장히 긴 인고와 희생의 시간을 견딘 끝에 심신이 건강한 아이를 낳아 완벽하게 키워야 하는 존재’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때 그런 생각이다. 그 생각은 육아를 더 어렵게 만든다.
아이가 잘 안 먹어도, 아이가 감기에 자주 걸려도, 아이가 키가 작아도, 아이가 뚱뚱해도,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여도, 아이가 정서가 불안해도,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심지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도 엄마들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로서 미안해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부모가 가진 지나친 죄책감은 아이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정말 착한(?) 부모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안 된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못하는 부모들이다.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다 들어주고, 아이를 방긋 웃게 하는 데만 전력 질주한다. 그런데 착한 부모들의 아이들이 착하지 않다. 이 아이들은 자라면 자랄수록 말을 안 듣는다. 착한 부모는 아이를 키우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아이의 감정을 그렇게 살펴 주는데도, 아이는 불편한 감정을 계속 표출한다. 점점 더 크게 표출한다. 이렇게 되면 육아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육아가 갈수록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부모의 의도는 선했다. 아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부모의 의도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맞다. 하지만 부모의 의도와 행동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서까지 그 자세를 지나치게 고수하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 행동으로 때로는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갈등이 생기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부모든 아이든 서로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다. 불편한 감정은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한테 화 한 번 안 내고,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는 부모가 있다.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해야 하는 싫은 소리마저 안 하고 참은 것은 아닌지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이다. ‘아이인데 뭘, 내가 이해하고 말지’라든가 ‘아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내가 어떻게 봐. 그냥 넘어가자’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에게 전혀 좋지 않다. 아이가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싫은 소리도 해야 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알려 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라면 아이의 불편한 감정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부모라는 안전한 창구를 통해서 불편한 마음을 내뱉는 경험으로 아이는 소통을 배운다. 그렇게 자라야 다른 사람과도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며 살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