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똑딱이 디카는 기성세대에겐 추억을, Z세대에겐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빈티지 디지털 카메라 팔아요.’
장롱에 처박혀 있던 옛날 디지털 카메라(디카)를 처분하려고 당근마켓에 헐값으로 올리니 채팅창에 불이 붙는다. 웃돈을 주겠으니 제발 자기에게 팔아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이걸 산다고? 예상하지 못한 인기다. 구형 콤팩트 디카가 작년부터 Z세대에게 인기다. 말 그대로 똑 버튼만 누르면 딱 사진이 찍혀서 ‘똑딱이’라는 애칭이 붙은, 밀레니얼 세대라면 누구나 하나씩 들고 다녔을 그 디카 말이다. 처음엔 스쳐 지나갈 치기 어린 유행이라 생각했다. 흐리멍덩한 색감에 흔들린 채 찍히기 쉬운, 그 시절의 똑딱이 디카는 기능적으로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똑딱이 디카는 최근 중고 장터에서 십수만 원에 거래되는가 하면 틱톡에서는 ‘digicam’ 해시태그가 4만 개를 넘어서며 전 세계적인 유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2 월드컵 시절 보급된 300만 화소의 똑딱이 디카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유행에 맞물려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기자도 당시 선물로 받았던 니콘 쿨픽스 2500으로 인해 사진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입학과 졸업, 결혼 같이 기념일에만 꺼내 찍던 필름 카메라(필카)와 달리 똑딱이 디카는 친구와 같이 먹은 떡볶이 사진처럼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똑딱이 디카 열풍은 아이폰 출시 이후 급격히 쇠락했다. Z세대는 왜 스마트폰보다 한참 부족한 성능의 똑딱이 디카에 그토록 열광할까?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달이 불러온 ‘극사실주의’도 문제가 됐다. 대충 찍어도 얼굴 모공이 그대로 드러나는 해상력이 외모에 민감할 시기인 Z세대에겐 단점이었다. 그렇다고 필터 앱을 쓰자니 그건 또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별로다. 반면 똑딱이 디카의 뿌연 화질은 피부 잡티를 자연스럽게 가려주는 뜻밖의 장점이 됐다. 한때 필카가 이런 역할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필름 가격이 너무 올라 유행이 똑딱이 디카로 전이된 것이다.
‘대형 캔버스’의 부재도 원인이다. 디카가 부흥하던 시기에 디시인사이드와 SLR 클럽, 레이소다 같은 인터넷 사진 커뮤니티도 함께 성장했다. 당시엔 최대한 사진을 크게 올린 뒤 컴퓨터 모니터로 확대해 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사진을 소비한다. 가장 유명한 SNS인 인스타그램의 가로 최대 크기는 1080픽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수천만 화소의 스마트폰 카메라도 무용지물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경험하지 않은 시대나 사건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는 ‘아네모이아’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아네모이아는 미국의 소설가 존 코닝이 2012년 만들어 낸 신조어다. 성인이 돼 과거를 회고하는 ‘레트로’가 아닌, 접해 본 적 없는 문화를 동경한다는 것에서 차이를 가진다. 기자가 어릴 적 필카에서 느꼈던 감성과 향수를 Z세대는 똑딱이 디카를 통해 느끼는 것이다.
카메라 업계는 불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 자구책으로 고화질이면서도 경량화된 ‘미러리스’ 기술을 발전시키며 스마트폰에 맞서고 있다. 이에 질세라 최근 출시된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 S24 울트라는 인공지능(AI)으로 뭉개진 이미지를 복원하는 기술을 통해 100배 줌을 선보였다. 카메라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는데 정작 누려야 할 Z세대들은 부모님 장롱 속을 뒤지며 오래된 똑딱이 디카를 찾고 있다. 역시 사진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감성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