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 ‘의료 혼란’]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인지 정부 접근 방식이 문제였는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박성민·정책사회부
“정부는 의사들과 28번이나 만나 의대 증원을 논의했다는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가요. 도대체 양측이 무슨 이야기를 했답니까?”
정부가 이달 6일 내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뒤 의사들의 반발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은 19일 과반이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상당수가 병원 근무를 중단하며 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
그런데 기자 주변에선 정부와 의사들의 ‘의대 증원’ 논의가 왜 파국에 이르렀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가 다른 집단도 여러 번 만나 의견을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접점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이 마주한 결과는 끝이 안 보이는 ‘의료 대란’이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정부의 접근 방식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35년 국내 의료인력 1만5000명 부족’이란 분석을 제시한 한 전문가도 단번에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이들을 가르쳐야 할 대학과 수련시켜야 할 병원이 준비할 시간을 주고 ‘단계적 증원’을 검토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정원(3058명)의 65%를 한 번에 증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건설현장 폭력행위(건폭), 사교육 카르텔 등 특정 집단을 공격해 지지율을 올려온 정부가 이번에는 의사를 대상으로 지목한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국민과 환자 앞에 당당할 순 없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될수록 국민에게는 “우리가 없어도 되는지 두고 보자”는 특권의식으로 비칠 뿐이다. 처음에 “정책 방향에 공감한다”고 했던 필수의료 패키지 대책마저 거부하는 모습에 의사들 내부에서도 “같은 의사인 게 부끄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각자 떳떳하다면 지난 1년간 의정협의에서 무슨 논의를 했는지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 현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는 그걸 보고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