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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으로 한식 입문한 파리지앵… 떡 유럽 수출 1000만 달러 돌파[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4-02-21 23:39:00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분식집 ‘다울분식’에서 1일(현지 시간) 프랑스인들이 떡볶이와 핫도그 등 한국 음식을 즐기고 있다. 가게를 가득 채운 고객들 중에 한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핫도그나 떡볶이 같은 분식만 먹어요.”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식당 ‘다울분식’에서 1일(현지 시간) 핫도그를 먹고 있던 학생 아브릴 자피니 씨는 “분식으로 한식을 배웠다”며 웃어 보였다. 자피니 씨는 아직 분식 외에는 불고기나 비빔밥 같은 전통 한식을 먹어보질 못했다. 다울분식에서 만난 프랑스인들은 전통 한식보다도 떡볶이, 김밥 같은 분식으로 한식에 입문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핫도그와 떡볶이, 치킨, 김밥 등 흔히 분식이라 부르는 음식만 파는 이 식당은 우리에겐 친숙한 평범한 분식집과 다를 바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2시경이었는데도 이 식당 앞 긴 줄이 줄질 않았다. 내부에 자리가 없어 가게 밖에 놓인 테이블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특이한 건 그중에 한국인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이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치킨을 집어 먹고, 떡볶이와 라면을 매운 소스에 버무려 먹고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재불교포 마크 리 씨는 “개점한 지 1년이 됐는데 매출이 3배로 늘었다”며 “핫도그가 원래 제일 인기였는데, 요즘은 치킨이 급격하게 많이 나간다”고 전했다.》





마트에 냉동 꽈배기-떡꼬치

프랑스 파리 도심의 한 버스 정류장에 걸린 떡꼬치 광고.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프랑스에 있는 한식당은 대략 300여 곳. 대부분 한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비빔밥이나 불고기 등을 판다. 하지만 최근엔 분식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식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분식이 파리지앵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 분식은 파리에서도 주로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빠르게 주문해 먹을 수 있는 데다 정식보다 상대적으로 자극적인 맛이라 입소문을 탔다. 특히 팬데믹 시기가 분식이 인기를 얻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자 직접 밥을 해먹거나 배달을 하게 된 프랑스인들이 소셜미디어로 한국 분식을 접하며 ‘새로운 메뉴’에 눈뜬 셈이다.

프랑스 남부 니스엔 ‘느낌(Nukim)’이란 분식 패스트푸드점도 생겼다. 맥도널드나 버거킹처럼 핫도그, 치킨, 길거리 토스트 등을 신속하게 주문해 테이크아웃도 할 수 있다. 파리 ‘코레와’ 매장에선 라면, 즉석밥 등 인스턴트 분식 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한다. 온라인 주문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서울의 한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즉석 라면 조리기까지 등장했다.

식당뿐만 아니라 집에서 한식을 조리해 먹으려는 수요가 늘자 현지 대형마트들도 한국 분식을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날 들른 파리 도심의 현지 냉동음식 프랜차이즈 피카르에는 “맛있어요”라는 한글과 함께 분식 판매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니 꽈배기, 만두, 짜장면 냉동 식품이 대여섯 개 남았을 뿐 상당수 매대가 텅 비어 있었다. 같은 아시아 음식인 중식, 일식 제품 매대는 가득 차 있어 비교됐다.

프랑스의 대표적 대형마트 모노프리의 한 지점에는 아예 한 코너가 한국 분식 상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다양한 한국 라면은 물론이고, 떡볶이와 잡채 즉석요리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카르푸와 모노프리에 한국 가공식품을 납품하는 김성수 수퍼에프 대표는 “프랑스에 분식집이 많아지면서 프랑스 전국에서 한식 가공식품 주문이 늘고 있다”며 “바이어가 먼저 한식 제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라면-떡 수출, 최대 폭 증가
높아지는 분식의 인기에 한국 가공식품 수출도 날개를 달았다. 특히 라면과 떡볶이의 수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지역 떡 수출액은 1072만 달러(약 143억 원)로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라면 수출액은 1억4524만 달러로 역시 최초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전년 대비 증가 폭은 각각 55.6%, 63.2%로 모두 역대 최대였다.

사실 유럽에서 떡볶이는 몇 년 전만 해도 어색하고 불편한 음식이었다. 우리에겐 ‘솔 푸드’이지만 외국인들은 물컹하고 끈적한 식감을 싫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도 딱딱해져 유통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받았다. 뭣보다 소스가 너무 맵다는 평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한식 세계화 사업을 추진하며 떡볶이연구소까지 세워 수출 전략을 짰지만 연구소는 1년 만에 문을 닫는 굴욕을 겪었다.

이랬던 떡볶이가 가정식 간편 음식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유럽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한국 드라마, 아이돌 등 K콘텐츠의 영향이 첫 번째 이유였다. 분식집에서 만난 여러 프랑스인은 “한국 드라마 등을 보며 분식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했다. 알리아 시소코 씨는 “K팝을 좋아해서 아이돌들이 자주 먹는 떡볶이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의 홍보 행사도 큰 몫을 했다. aT는 지난해 라면과 떡볶이를 유망 품목으로 육성하기 위해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마케팅을 벌였다. 현지화를 위해 제품을 다양하게 개발한 오랜 노력이 이제 빛을 발하고 있는 것. ‘떡볶이의 신’을 수출하는 동원F&B는 떡을 상온에서도 10개월까지 유통될 수 있게끔 제품을 개발해 판매망을 넓혔다.

‘日스시’ 같은 대표 상품 부재
유럽에선 최근 라면의 원조로 통하는 일본 라면보다도 한국 라면이 인기를 얻는 분위기다. 뭣보다 종류가 다양한 점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한국 관련 인플루언서인 제이슨 씨는 “한국 라면은 조리법은 물론이고 맛이 다양하다”며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유독 라면을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한다”고 설명했다.

라면 역시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더 사랑받고 있다. 불닭 볶음면은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서 먹기 챌린지를 벌인 게 인기 폭발의 시초였단 게 정설이다.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흥행하며 영화 속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도 열풍을 낳았다.

분식을 비롯한 한식은 한국 호감도를 높이는 소프트파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K콘텐츠의 인기와 잠재력을 보여주는 브랜드파워 지수는 전체적으로 58.8점. 이 중 음식이 66점으로 뷰티(62.3점), K팝(61.7점) 등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한식에 대한 관심은 한국 관광으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기도 한다.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한식 강좌에 참여 중인 에리카 베르사니 씨는 “한국 음식을 좀 더 알고 싶어 올해나 내년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식도 이제는 ‘대표 상품’이 나올 때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스시처럼 세계 어디에서건 한국 요리 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음식이 나와줄 타이밍이란 조언이다. 프랑스의 한 요식업 전문 매체는 “한국 요리는 일본 스시와 같은 대표 메뉴가 아직 없다”며 “한국 길거리 음식인 콘도그는 핫도그를 변형한 창의성과 막대기를 꽂아 이동하면서도 먹을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춰 (대표 메뉴가 될) 잠재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