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우 정치부 차장
인도네시아 국적 연구원 A 씨에 대한 우리 당국의 조사가 막바지 단계라고 한다. 관계 당국자는 “빠르면 이달 중에도 나올 수 있다”고 했다.
A 씨는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관련 자료 유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17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미인가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소지하다 적발됐다. A 씨가 외부 반출을 시도한 USB메모리 안에는 자료 파일만 49개로, 그 내용이 방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의 정보 유출 시도는 이달 초 뒤늦게 알려졌다. 후폭풍은 거셌다. 2016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KAI와 KF-21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사업비의 약 20%(1조7000억여 원)를 부담키로 했다. 약속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지난달까지 무려 1조 원을 체납했다. 가뜩이나 상습 체납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차에 이번 A 씨의 자료 유출 시도 사실까지 알려지자 인도네시아 당국을 향한 비난 여론이 국내에서 끓어올랐다.
난감해진 건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참에 인도네시아를 털어내고 ‘독자 개발’ 하자는 강성 여론이 힘을 받고 있어서다. 개발 상황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이제 와서 독자 개발로 노선 전환하긴 힘들다.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인도네시아는 K방산 수출의 핵심 국가 중 하나다. 이 일로 관계가 틀어지면 향후 방산 수출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분담금 체납이나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한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계속 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야 할까. 일단 A 씨에 대한 조사 결과부터 지켜봐야 한다. KF-21 개발에는 미국으로부터 수출 승인받은 미국 방산업체의 기술이 다수 적용된다. A 씨의 USB메모리에 미국이 인도네시아에 이전을 허용하지 않은 기술 등이 담겨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국이 훨씬 엄격한 제약 조건을 내밀어 공동 개발 환경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다행히 아직 A 씨의 파일에 문제가 될 만한 기밀 자료가 포함돼 있단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와 인도네시아 측 모두 협력 사업을 이어 나가겠단 의지도 강한 편이다.
다만 이번 유출 사건을 덮고 가더라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인도네시아 측이 계약 파기 수준으로 체납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곧 결과가 나올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가 전투기 개발보다 구매에 관심을 더 많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찜찜하다.
앞서 일부 외신에선 한국이 KF-21 공동 개발을 위한 파트너로 인도네시아 대신 아랍에미리트나 폴란드 등과 손잡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공동 개발에 관심 있는 국가들이 몇 군데 있는 건 사실이라고 한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