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연애-육아 콘텐츠 인기
《한국의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6명(작년 4분기 기준)으로 초저출산 기준인 1.3명의 절반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정반대로 연애, 육아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인기다. 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걸까.
한국은 최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송가의 트렌드로 자리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그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대부분이 연애와 육아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네덜란드에서 방영된 ‘빅 브러더’로부터 시작된 서구의 리얼리티쇼가 주로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나 자극적인 서바이벌(이를테면 무인도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는 16인의 게임을 보여준 ‘서바이버’ 같은)을 담아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건 다분히 한국화된 경향이다. 》
다양해지고 수위 세진 프로그램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사랑의 스튜디오’(1994년) 같은 고전적인 연애 프로그램은, ‘우리 결혼했어요’(2008∼2017년) 같은 연예인 버전의 가상 결혼 리얼리티를 거쳐, ‘짝’(2011년) 같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서서히 변모했다. 짝은 사실상 국내 리얼리티쇼의 태동을 알린 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반인 출연자, 그들의 내밀한 사적 대화나 행동의 ‘도촬’을 어떤 필터링 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결국 그 자극적인 연출에 출연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폐지됐지만, 짝의 계보는 같은 연출자인 남규홍 PD가 다시 론칭한 ‘나는 솔로’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짝과는 달리 멜로드라마 같은 달달한 감정의 교류를 담아내는 ‘하트시그널’(2017년)이 등장했고, 이로써 한국형 연애 리얼리티의 두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 버전’과 ‘판타지 버전’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OTT의 등장은 보다 자유로운 수위를 가능하게 했고 연애 리얼리티는 돌싱(돌싱글즈), 이혼 부부(우리 이혼했어요), 심지어 성소수자(메리퀴어)까지 다양해졌다.
초저출산 사회 한국에서 연애와 육아를 소재로 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연애, 결혼, 출산을 하기 어려운 젊은층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채널A의 육아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 채널A 화면 캡처
연애-결혼 포기, TV로 간접체험
연애와 육아는 최근 방송가의 가장 뜨거운 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런데 이 트렌드를 출산율 0.6명으로 이미 초저출산(1.3명 이하가 기준이다)을 넘어 그 절반에 해당하는 한국의 현실과 함께 떠올려보면 그저 웃고 넘길 아이러니로만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그 열풍 속에는 대중이 갖고 있는 결혼관은 물론이고 연애, 육아에 겹쳐진 현실들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결혼율이 매해 줄고 있고 실제로 청년층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뀐 가치관의 차이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경제적인 조건이다. 치열한 취업 경쟁, 치솟는 부동산 가격, 만만찮은 비용을 요구하는 육아 현실, 임신, 출산으로 겪게 되는 경력단절 등등 이제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조차 개인 생존 차원에서 부담스러워진 현실이다. 결국 한국의 연애, 육아 프로그램 열풍은 정반대로 실제 연애와 결혼을 하기 어려운 이들의 대리충족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나의 현실과는 다르다’ 위화감
Mnet의 연애 프로그램 ‘커플팰리스’. Mnet 화면 캡처
SBS Plus의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 SBS Plus 화면 캡처
‘연애-육아 지옥’에 되레 위안도
혹자는 매워진 연애·육아 리얼리티는 오히려 초저출산 사회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저들의 사례를 그저 일반화해 받아들이는 데서 생기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방송은 개별적인 사례를 다룰 뿐 그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화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출연해 올바른 시각을 만들어주는 건 중요하지만 또한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일반화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보다 중요해지는 건 사실상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연애나 결혼, 육아 같은 것들이 어째서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어야 가능해진 현실이 되었는가를 들여다보고 이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과 실천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매워진 프로그램이 실제 현실로 고착화되지 않고, 대신 누구나 희망할 수 있는 삶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