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법원, 韓 인도 요청 기각 피해 50조, 도피 22개월만에 “美송환” 이르면 내달 25일 뉴욕재판 출석 韓피해자들 “내돈 어떻게 배상받나”
위조 여권 사용 등으로 동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의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 포드고리차=AP 뉴시스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3)가 미국에 송환돼 재판을 받게 됐다. 미국과 ‘송환 경쟁’을 벌였던 한국은 송환을 기약할 수 없어 국내 20만 명 투자자는 사실상 구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 씨가 일으킨 투자 피해는 세계적으로 50조 원 이상으로 추산돼 미국에서 100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21일(현지 시간) 권 씨를 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고 현지 일간지 포베다가 이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권 씨에 대한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기각됐다고 덧붙였다. 송환국이 결정된 건 권 씨가 도피한 지 22개월 만이다.
● 韓-美 송환 경쟁, 법원 美로 보내
체포 당시 한국과 미국은 권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 경쟁을 벌였다. 한국 법무부는 3월 29일, 미국 국무부는 4월 3일 각각 인도 청구서를 보냈다고 몬테네그로 법원은 밝혔다. 권 씨 측은 형량이 적은 한국으로 송환되길 원했지만 결국 법원은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법원은 결정 근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매체에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며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 씨가 항고하면 송환이 더 늦어질 수 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3월 22일까지 미국으로 송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월 25일 뉴욕 남부지방법원에서 시작되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소송 재판에 그가 출석할 수도 있다.
● 美, 100년 이상 징역형 가능
권 씨는 미국에서 중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의 형을 합산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미 SEC는 2022년 2월 권 씨와 테라폼랩스에 대해 증권 사기 혐의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 연방 검찰도 한 달 뒤 상품 및 증권 사기, 시세 조종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비슷한 사례로 가상자산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고객 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리는 등 7개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고, 3월 선고 공판에서 100년 이상의 형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22일 테라·루나 사태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채팅방 등에는 “내가 잃은 돈은 어떻게 배상받나”는 글들이 올라왔다. 동시에 안도하는 반응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국내에선 미국과 달리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인정되지 않아 증권 사기가 적용되기 힘들고, 적용돼도 형량이 적어 ‘솜방망이 처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피해자들의 구제는 후순위로 밀려날 것으로 내다봤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글로벌테크노경영전공 교수는 “미국 투자자에 대한 우선 배상이 이뤄져 한국 피해자에게 줄 자산은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