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예매 1위로 출발
풍수-무속 등 한국적 정서 살려… 베를린영화제 공식 초청 받아
사전예매 36만장… ‘듄2’ 넘어서
최민식 “넘치지 않도록 연기”… 유해진-김고은-이도현 열연 빛나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에서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최민식)이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묫자리를 파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쇼박스 제공
‘파묘(破墓).’ 이름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이 단어를 영화 ‘검은 사제들’(2015년) ‘사바하’(2019년)의 장재현 감독이 물었다. 수식이 필요 없는 배우 최민식과 유해진, ‘뜨는 별’ 김고은과 이도현까지 캐스팅 역시 쟁쟁하다. 오컬트물 마니아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화 ‘파묘’가 22일 개봉했다. 22일까지 사전 예매가 36만 장을 돌파하며 제작비 2500억 원이 든 티모테 샬라메의 ‘듄: 파트2’를 훌쩍 뛰어넘었다. 영화는 제74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돼 “신선한 한국형 오컬트물”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배우 김고은과 이도현이 각각 젊은 무당 화림과 봉길 역을, 연기파 배우 유해진이 상덕과 오랫동안 일해온 장의사 영근 역을
맡았다. ‘파묘’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한국 오컬트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장재현 감독이
연출했다. 쇼박스 제공
‘파묘’는 수시로 비명 소리를 듣는 기이한 병이 대물림된 집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집안의 장손이 자신의 아들마저 원인을 알 수 없이 시름시름 앓자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에게 의뢰를 한다. 조상 묫자리에 탈이 나 후손들이 앓아눕는 ‘묫바람’이란 걸 알게 된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을 찾아가 작업을 제안한다. 묫자리를 둘러본 상덕은 처음에 해당 묫자리가 엄청난 악지(惡地)라는 걸 알게 되고 “건드리면 줄초상 난다”며 거절했지만 거액의 의뢰비와 의뢰인의 어린 아들을 외면하지 못해 결국 파묘를 시작한다. 묫자리를 파기 시작한 이들은 믿지 못할 광경을 마주한다.
영화는 풍수지리와 무속신앙, 조상의 영(靈)을 등장시키며 한국적 오컬트물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영화 후반부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괴설로 내용이 확장된다. 장 감독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와 이 땅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처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뭔가를 꺼내 깨끗이 없애는 정서를 ‘파묘’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상덕 역의 배우 최민식은 “자칫하면 관념적이라 관람객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고 귀신이 등장하면 유치해질 수도 있다. 장 감독은 이 경계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며 “진지함을 유지하되 철학적 사유를 하게 하면서 재미도 주는 건 보통 능력이 아니다”라면서 데뷔 35년 만에 첫 오컬트물에 도전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조감독이라고 생각했다”며 장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장 감독의 전작을 너무 재밌게 봐서 연출 방식을 관찰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민식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불을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실제로 구현한 장 감독에 대해 “뚝심이 마음에 들었다. 똘똘한 막냇동생 같아서 뭐든 해주고 싶었다”며 “좋은 배우들 사이에서 튀지 않는 벽돌 한 장으로 딱 들어가는 것처럼 연기했다”고 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를 했다는 최민식의 말대로 장 감독의 전작들처럼 하드코어한 오컬트물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영화는 중간중간 실소를 터뜨리게 하며 완급 조절을 하기도 하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배경을 가져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덕에 오컬트물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추게 된 면도 있다.
돌비 애트모스 등 음향에 특화된 상영관에서 관람하면 몰입감이 배가된다. 낮고 깊게 울리는 기이한 소리가 귓전을 빙 둘러 날아갈 때는 정말 ‘험한 것’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으스스하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