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업무중단이 이어지고 있는 23일 서울시내 한 공공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의 파업 주역이었던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가 전공의 집단행동의 법적 위험성을 설명하며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 교수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공의 선생님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대해 “정부가 재난위기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이는 정부가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근거가 된다. 주동자를 구속하고 강력한 행정처분을 빠르게 집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행정처분 기록은 의업(醫業)을 그만둘 때까지 따라다닌다. 국내 면허로 해외로 나가는 데 치명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외국에 취업하려면 ‘Good Standing Letter’를 내야 하는데, 거기에 행정처분이 남게 된다”며 “지난 20여 년간 의료계 투쟁에 앞장선 김재정 전 의협 회장, 한광수 전 의협회장 두 명 외는 의료업 제한을 받지 않았다”며 행정 처분의 위험성을 법적으로 분석했다.
권 교수는 전공의 집단사직이 근로기준법 절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 근로조건은 민법 660조 제2항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전공의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사직서 제출 후 바로 병원에서 나간 점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며 “단순한 사직으로 해석하기보다 목적을 위한 행위로 볼 가능성이 높아 의료법상 행정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행정처분은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오는 것과 무관하게 적용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전공의가 병원의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선배로서 이런 현실을 물려줘 미안하고 안타깝다. 다만 이런 현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다만 전공의들의 이같은 행동이 의사윤리지침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자마자 병원을 떠난 것은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고 있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윤리적 원칙에 따라서 보더라도 중증 환자 수술이 지연되고 점을 고려하면 ‘나쁜 결과를 용인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치적인 이유건 개인적인 이유건 간에 병원을 나갈 때 여러분(전공의)이 의사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을 떠난 건) 근무지 무단이탈에 해당한다. 노동조합도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만 파업할 수 있게 쟁의권을 인정한다. 사직은 개인 선택이지만 (급작스러운) 과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일반적인 직장인으로서 사회통념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의업(醫業) 포기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다만 계속 의업에 종사하고 싶다면 최소한 의사로서 직업윤리와 전공의로서 스승에 대한 예의, 근로자로서 의무 등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종합하면) 여러분의 행동은 성급했다”며 “개인에게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또 “진정으로 의업을 그만두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퇴직 절차를 밟고 병원을 떠나길 바란다”며 “투쟁하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더 나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급속성장의 부작용에 직면해 있는 대한민국의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이고 행동이다”라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총괄 간사를 맡아 의사들의 파업 최전선에 섰다. 이후 그는 2003~2006년 대한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와 대변인을 지냈고, 현재는 의사이자 법학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