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열린 의사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2.23. 뉴스1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업무를 간호사들이 강제로 떠맡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간호사들은 대리 처방과 치료 처치, 수술 봉합 등 불법 진료에 내몰리면서 불안과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3일 오전 ‘의사 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의료행위에 노출된 간호사들의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간협은 전공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20일 오후 6시부터 간협 홈페이지 등을 통해 ‘현장 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를 운영해왔는데, 23일 오전 9시까지 총 145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의료기관별 신고 접수 건수를 보면 상급종합병원이 6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종합병원(36%), 병원(전문병원 포함, 2%) 순이었다. 신고한 간호사는 일반 간호사가 72%를 차지한 반면,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24%에 불과했다. PA 간호사는 주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 업무 전반을 대신하는 의료진이다. 현행법상 의사를 대리하는 PA 업무는 불법이지만, 만성적인 의사 구인난에 시달리는 필수의료 특성상 현장에선 암암리에 투입돼왔다.
특히 PA 간호사의 경우 평일 밤 근무로 발생한 휴무를 ‘개인 연차’를 이용해 쉬도록 강요받았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당직 교수가 처방 넣는 법을 모른다며 간호사에게 휴일에 출근하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간호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면서 환자 안전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일손 부족으로 환자 소독 시행 주기가 4일에서 7일로 늘어났고, 격일로 시행하던 거즈 소독은 평일에만 시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많은 간호사들은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장치 없이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 과중한 업무를 감내하고 있다”며 “의료공백을 PA 간호사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의 모든 간호사가 겪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키겠다는 간호사들을 더 이상 불법 의료 현장으로 내모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면서 “법의 모호성을 이용한 불법 진료 행위가 근절되는 순간까지, 간호사 보호하는 법이 마련될 때까지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