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차림으로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한 최수길 씨. 큰 배낭 하나에 대체로 모든 짐을 넣고 다닌다. 캐리어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춘천=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런 특이한 제목의 유튜브 사이트를 지인이 보내왔을 때 잠시 망설였다. 지면에 유튜버를 다룰 경우 ‘홍보해준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전직 공무원 최수길 씨(64)의 ‘수길따라(sugilway) TV’는 조금 달라 보였다.
상업성과 거리가 있었고 퇴직후 삶을 고민하는 시니어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듯했다. 무엇보다 그가 내세우는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캐치프레이즈가 강렬했다.
어쩌다 유튜버
“퇴직하면 바로 떠나려 했는데, 코로나19 상황하고 겹쳐 움직일 수 없었죠. 튀르키예가 가장 먼저 관광객에 대한 방역을 완화했어요. 여행하며 찍은 동영상을 가족에게 보냈는데 딸이 재미있다며 유튜브에 올리자고 하더군요.”그가 40일간 찍어온 영상들은 ‘60대 아빠의 나홀로 터키여행’이란 제목으로 약 40편이 올라갔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몇년간 100명도 안되던 구독자가 하루 700~800명씩 늘었고, 15편 정도 올렸을 때 1만명을 돌파했다.
-반응이 좋은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해외에 못 나가니까 대리 만족이 됐던 것 같아요. 또 댓글을 보면 ‘자신이 여행하는 느낌’이란 표현이 많아요. 제가 해외에서도 주로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그분들과의 소소한 대화나 일상을 그대로 전하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같아요.”
이후 ‘은퇴 후 따듯한 태국에서 겨울나기’를 거쳐 스페인과 포르투갈, 베트남, 몽골에 다녀왔다. 필리핀에서는 어학연수를 겸해 석 달 간 체류했고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코카서스 3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각기 묶어서 가기도 했다. 그렇게 이번의 방글라데시까지 17개국을 돌았다.
코카서스 3국으로 떠나기 위해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편에 대해 설명하는 최수길 씨. 유튜브 ‘수길따라TV’ 캡처
수길따라TV는 구독자 13.4만 명, 누적 조회수 2037만회를 기록 중이다(15일 현재). 구독자의 85%가 45~65세 층이다.
가난, 그리고 야학 선생님과의 인연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그는 강원도 교육청에서 40년을 근무하고 2020년 퇴직했다. 최종직함은 도 교육청 행정국장. 직전에는 원주 교육문화관 관장을 지냈다. 지방직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위직인 3급 부이사관까지 올랐다.“무척 가난했어요. 혼자 월남했던 아버지는 1907생이셨고 저희가 자랄 무렵에는 이미 연로해 일을 못하셨어요. 남에서 만나 결혼한 어머니는 6.25때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셨죠. 저희 4남매의 정규학력은 국민학교 졸업으로 끝났어요.”
신문팔이나 ‘아이스케키’ 장사 등으로 가계를 도우며 야학에서 공부했다.
“7사단 군인교회에서 저녁에 중학교 과정을 가르쳐줬어요. 공부만이 아니라 인생 멘토로 형님처럼 도와줬어요. 부대에서 짬밥을 담아와 나눠주기도 하고 치약 비누 등을 주기도 했죠.”
이런 군인 중 고려대 법대생으로 군복무 중이던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현 휴젤 대표)과의 인연이 재미있다. 차 대표는 그를 눈여겨보고 계속 관심을 보이며 격려해줬다.
“춘천의 한 명문고에 장학생으로 합격해 학비는 해결됐는데 기숙사비를 낼 수가 없었어요. 한동안 비슷한 처지 친구 자취집에서 살며 학교에 다녔는데 끼니를 때울 수가 없었죠. 어느날 기숙사 식당에서 몰래 밥을 먹으려다 들켜 엄청나게 맞고 퇴학처분 당했어요. 죄명은 ‘무단도식(盜食)’이었네요.”
삼청교육대 갈 뻔했던 말단 공무원
1977년, 인권도 복지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는 당시 시대상황까지 겹쳐 고난의 연속이다. 한동안 제주도에 가서 일본 밀항을 꿈꾸기도 했다.“그 무렵 이미 제대해 서울로 간 차석용 선생님이 ‘서울로 와서 우리 집에서 지내며 공부하라’고 권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고집이 좀 있어요.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하고는 올라와서 고졸검정고시를 치르고 입주과외를 했어요. 드디어 좀 살 만해졌는데 전두환 정부가 과외 금지 조치를 내놨죠.”
그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1980년 9월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됐지만 부정투표에 항의했다가 이듬해 5월 의원면직 당했다.
“삼청교육대 갈지, 입 다물고 사표쓸지 선택하라고 하더군요. 집에 돌아가 삼청교육대 가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결사반대하셨어요. 당시 집근처에 교육장이 있었는데 교육이라는 미명하게 잔혹한 폭력이 행해지는 걸 아신 거죠.”
그렇게 잘린 뒤 불과 석달 뒤인 8월, 이번에는 교육행정 공무원 시험에 다시 합격했다.
“1~2년 일하고 돈을 모아 대학에 가려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 생기고 부모님 부양하고 하느라 그냥 눌러앉게 됐네요.”
그는 50세에 한양사이버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야학선생님과의 인연도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간 차 씨는 10여 년 뒤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귀국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게 그였다며. 2년전 그의 딸 결혼식에는 화환과 축의금을 보내왔다.
2022년 딸 은혜씨의 결혼식 장면. 수길따라TV 캡처
‘관광’ 아닌 ‘여행’을 하시라
―자유여행을 가는 이유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관광을 가요. 관광이란 말 그대로 ‘보는’ 거잖아요. 가이드 안내로 다니며 보는, ‘왔노라 봤노라 찍었노라’죠. 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 얘기 나누고 그 나라 음식을 직접 먹어보는 체험과 교류를 하는 거죠. 여기 더해 가난한 사람 만나면 쌀 한자루라도 채워주고 떠나는 나눔이 있다면 더 좋겠죠.”
―퇴직자들은 관광보다는 여행을 하시라는 거군요.
“이제는 그럴만한 시간 여유가 충분히 있으니까요. 지난번 미얀마 영상에 제가 주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장면이 있는데, 왜 돈을 나눠주냐고 뭐라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현장을 보지 못하셔서 그래요. 그 나라는 지금 절대빈곤이라 한 끼 먹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현장을 보면 저보다 더 그런 마음이 생기실 거예요.”
미얀마에서 한 끼를 해결할 때 1000짯(약 600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가 나눠준 돈이 1000짯 지폐였다. 그것 외에 달리 그분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고.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예요. 숨길 일도 아니죠. 다만 어린 시절 가난이 꿈을 빼앗는다면 그건 문제예요. 지금 미얀마는 많은 이들이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인데, 이걸 외부로 알리는 일도 수월치 않더군요. 영상을 찍는데도 엄청난 통제를 느꼈어요.”
최씨는 1986년부터 춘천에서 살아왔다. 그가 안내해준 한방찻집에서. 춘천=김동주 기자zoo@donga.com
“선진국이라는 유럽도 소매치기가 득실거리고 지저분해요. 여행은 그 나라에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매치기 만나거나 바가지 쓰는 건 당연한 거예요. 여행은 그걸 감수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감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지아에서는 위험한 택시를 타기도 했다. 이때는 카메라가 그의 수호장비가 된다.
“돈 더 달라면 바가지 써주면 돼요. 싸우는 것보다 낫죠. ‘필요한 거 뭔데, 알았어. 더 줄게’하면서 ‘나 유튜브 하니까 사진 좀 찍자’며 그들의 사진을 찍고는 ‘이거 실시간으로 한국으로 전송된다’고 말해요. 그럼 얘네들도 웃어요. ‘이거 더 털다가 다치겠구나’고 생각하는 거죠. 자기들 얼굴이 다 나갔다고 하니까. 그렇게 지혜롭게 넘겨야죠.”
소매치기 바가지 정도는 감내해야 진짜 여행
-시니어들에게 자유여행 팁을 주신다면.“갈 곳 정할 때 날씨를 잘 살펴보세요. 나이가 있는 분들은 날씨 때문에 굉장히 힘들 수 있어요. 극기 훈련하러 가는 거 아니니까요. 그 나라에 대해 사전에 공부도 하셔야죠. 일단 역사부터, 그리고 지리 교통 음식 문화 이런 식으로 해나가요. 저는 주로 인터넷으로 해요. 항공권은 한 달 전까지는 구입해야 저렴하게 살 수 있어요.”
한 달 이상 해외여행을 할 때 준비물들. 여권 등 서류부터 모자,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제, 각종 약품과 라면, 커피믹스까지 다양하다. 최수길 씨 제공
“비용문제를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해 영상을 올린 것도 있어요. 저는 20년 전부터 연금저축을 들고 달러 예금을 했어요. 외국가서 쓰려면 달러가 있어야 하니까요. IMF외환위기 때 1달러 2000원 근방까지 갔을 때 저는 해외여행에 나섰어요. 저로서는 1000원도 안 되게 샀던 달러니까 그 돈을 쓸 수 있었죠. 2000원에 환전해야 한다면 어떻게 나가겠어요?”
―그때 원화로 바꿨다가 나중에 떨어졌을 때 다시 사면….
“그건 달러를 투자 수단으로 하는 경우고 저는 해외여행에 필요한 만큼 모은 거니까 목적에 맞게 잘 쓴 거죠. 퇴직 후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니 이제 저금이 바닥났는데 다행히 구글에서 돈을 주네요.”
―구글이 수익금을 달러로 주죠. 실버버튼(구독자 10만) 이상되면 수입이 꽤 될 텐데….
“여행비용 걱정이 없어진 정도예요. 현지 가서 굶는 사람들에게 쌀이나 밀가루를 사줄 여유도 가질 수 있죠. 저는 채널을 돈버는 수단으로 삼지는 않으려 해요. 예컨대 사적인 광고를 하면 굉장히 많이 돈을 벌 수 있지만 일절 응하지 않고 있어요. 여행경비만으로 충분하고 제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가능하면 강연를 하러 다니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강연은 돈도 안되고 힘들고 시간도 많이 빼앗기지만 제 여행, 은퇴 후 삶에 대해서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은 거죠.”
지난해 9월 대구 인재개발원을 시작으로 경북인재개발원 제주평생교육원 등에서 ‘여행으로 시작하는 행복한 은퇴생활’을 주제로 강연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이나 중견 실무자들이 대상이다.
“‘국뽕’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방글라데시에서 귀국한 날 ‘바퀴벌레 모기 없는 편안한 방에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고 하셨는데 고생하고 돌아오면 이제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세요.“여행이 좋은 건 돌아갈 집과 나라가 있다는 거예요. 돌아갈 나라가 없다면 난민이죠. 전 집으로 돌아갈 때 굉장히 기분 좋아요. 나를 반겨주는 가정이 있고 내가 돌아갈 국가가 있으니까. 그걸 되새기기 위해 자꾸 떠나는 건지도 몰라요.”
―모자에 태극기 마크도 붙이고, 혹시 ‘국뽕’같은 거 있으신가요.
“음… 당연히 있어요. 제가 처음에 1980년대에도 여행을 갔잖아요. 그때만 해도 한국 모르는 사람 많았죠. 지금은 오히려 ‘서울’이라 하면 ‘와’ 탄성을 질러요. 요즘 K문화라 하잖아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도 많고 한국인이라면 더 도와주려고 하니 여행하기도 쉬워요. 국뽕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죠. 대신 예전에는 좀 실수를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자부심을 갖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편집중인 은혜 씨. 2년전 결혼했지만 일터가 춘천이라 친정에서 머무는 날이 많다. 약사인 남편도 조만간 춘천으로 옮겨올 계획이라고. 최수길 씨 제공
“그 분은 평소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대요. 미래가 불투명하기도 하고 나이 드는 것도 싫었는데 제 유튜브를 보고서 꿈이 생겼다는 거예요. 자기는 60세 이후의 인생은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는데 저를 보면서 ‘아 내가 왜 젊어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인생을 길게 계획해야 하는지 알겠더라’고, 어떤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이럴 때 아, 내가 유튜브를 하기를 잘했구나 하고 생각하죠.”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서도 시니어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니까요.
“퇴직자들도 그래요. 사회에서 ‘은퇴(隱退)’라고 하잖아요. 물러나서 숨는다. 근데 직업에서 은퇴하는 거지 인생에서 은퇴하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보기엔 내려놓기는 커녕 새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분들이 제 영상을 보면서 ‘나도 꿈을 꾸게 됐다’ ‘희망을 갖게 됐다’ ‘당신이 하는 거 보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게 반응해주시길 바래요.”
60대,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
그는 정식으로 성악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빼어난 성악실력을 보인다. 두 자녀도 모두 성악을 전공해 기회있을 때마다 세명이 함께 노래하곤 한다. 현재 아들 은총(38) 씨는 보디빌더로 유튜브 ‘총총TV(구독자 12.1만)’를 운영한다. 딸 은혜(33) 씨는 춘천시립합창단원으로 일하는데 최씨의 유튜브 동영상 편집자이기도 하다. 제목이나 자막에 ‘아부지’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최수길씨의 교육청 퇴임식에서 노래하는 아버지와 남매. 최수길 씨 제공
아버지와 남매는 2013년경 모 지상파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함께 출연했다. 당시 화면을 캡처했다. 최수길 씨 제공
“여행은 원래 70세까지 할 생각이었어요. 인생설계도 거기 맞춰서, 연금저축을 딱 70세까지 받도록 설계했어요. 그런데 요즘 같아서는 한 75세까지는 다니겠다 싶어요. 그 이후에는 국내를 다녀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강의에 치중해야 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젠 떠나기 싫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제가 여행을 떠나는 건 호기심과 설렘 덕이예요. 저는 아직도 이 나라 저 나라 지도를 들여다볼 때 너무 기분이 좋고, 밤에 비행기를 타고 불빛 반짝이는 낯선 도시에 내려갈 때 가슴이 두근거려요. 이 도시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이 사람들은 어떤 취미를 가졌고 무슨 음식을 먹고 살까. 그런 기대감이 끝이 없어요. 그 설렘 호기심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가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은퇴 직후는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가슴이 떨릴 때 떠나세요”
춘천=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