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서울조선팰리스아트투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 로비에 있는 미국 작가 대니얼 아셤의 작품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 조각. 조선팰리스 제공
호텔에서 경험하는 낯선 감각 중의 최고는 아트가 아닐까 한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식사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된다. 하루쯤은 호강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열고 벽에 걸린 아트 작품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긴다. 요즘 호텔의 아트는 세계적 미술관이나 갤러리급이다. 홈페이지에 작품 소개를 상세히 해 두고, 원하는 투숙 고객에게는 아트 투어도 해준다. 공간의 모퉁이마다, 식사 대기 장소에도 아트 작품들이 있다.
400여 점의 아트 여행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 로비에는 미국 작가 대니얼 아셤의 작품 두 점이 마주하고 있다.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 조각(위)과 ‘풍화된 석영 아라파시스’ 부조(아래)다. 옛 유물을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가 된다’는 주제의식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조선팰리스 제공
1980년 태어난 아셤은 요즘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손을 잡고 싶어 열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무려 143만 명. 최근에는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포켓몬 컬렉션’을 내놓았고, 크리스티앙 디오르와는 스니커즈와 가방, 포르쉐와는 ‘대니얼 아셤 포르쉐 911’을 선보였다. 그가 ‘미래의 유물’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발전시킨 세계관은 ‘허구의 고고학’이다. 구형 카메라 같은 사물들을 석고로 제작해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것처럼 펼쳐낸다. 그의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미래의 과거’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토니엘의 구슬 꽃, 정해나의 책가도…
조선팰리스는 해외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이 출장 와서 자주 찾는다. 스위트룸에서는 이들 브랜드의 홍보 행사도 종종 열린다.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위치해 고층빌딩 숲과 선정릉, 시그니엘 타워까지 바라보는 전망을 갖춰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요한 크레텐의 ‘글로리 스프링’
정해나의 ‘컨템포러리 궁중 책가도’
‘이타닉 가든’에서의 아트 런치
조선팰리스 36층에 위치한 한식당 ‘이타닉 가든’은 미셰린 1스타 레스토랑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식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누기 위해 식당 이름을 ‘먹다(eat)’와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식물원)’을 결합해 지었다. 이곳에 걸린 이정진 작가의 사진 작품 세 점은 수묵화 느낌이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조선팰리스 중식당 ‘홍연’에 걸려있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국화’
예를 들어 머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조선 정조 때 이만영의 글에 ‘백 가지 풀 가운데 머위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머위는 강릉이 고향인 저에게는 어릴 적 ‘머구대(머위대의 방언) 나물 먹어봐’라고 하시며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식재료입니다.” MZ세대인 손종원 이타닉 가든 셰프는 이 추억을 머위 냉채로 풀어 가져왔다. 숯에 구워낸 머위와 절여낸 머위장아찌를 곱게 간 잣과 감을 함께 버무리고 대하, 관자, 북장 조개를 곁들여 다양한 식감을 갖게 한 냉채였다.
조선팰리스 한식당 ‘이타닉 가든’의 메뉴들. 파래김을 종이학 모양으로 접은 주전부리를 비롯해 머위, 대추, 캐비어 등을 감각적으로 해석한 모던 한식을 내놓는다.
파래김을 종이학처럼 접어낸 주전부리도 감동이었는데, 한식 코스의 마지막 자개함은 한국의 미(美)의 결정판이었다. 나비와 모란 문양을 새긴 나전칠기함 서랍을 열 때마다 탄복이 터져 나왔다. 막걸리로 속을 채운 초콜릿 봉봉, 들깨 가나슈, 청 겨자 사과 젤리, 햇생강 찹쌀 약과, 도라지 정과, 곶감 단자…. 눈 속에 입속에 한국의 꽃 작품이 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점심 한식 코스를 즐기는 젊은 남성 몇몇이 보였다. 요리사들이 호텔에 찾아와 시식해보는 것일까 궁금해 호텔 측에 확인하니, ‘나만의 여유’를 찾아오는 MZ세대 고객이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젊은 여성이 혼자 와서 식사했는데, 원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가 예약해줘서 온 것이었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영상통화로 남자친구에게 그 과정을 전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세대는 호텔을 감각한다. 호텔은 우리가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