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 오늘 밤에도 세상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중입니다. 지난밤 당신이 놓쳤을 수도 있는 세계 각국의 소식들, ‘세계 한 조각’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순식간에 바뀌는 세상만사, ‘잠깐! 왜 이러는 거지!“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1월 셰이크 칼리드 빈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앞줄 오른쪽)와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 사무총장(앞줄 왼쪽)이 아부다비에서 AI 기업 ‘AI71’ 출범 행사에 참석해 둘러보고 있다.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 제공
지난달 9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 알 히슨 거리.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각양각색의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흰 ‘요새’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요새는 1790년대 지어진 아부다비 최고(最古) 석조 건축물 카스르 알 호슨입니다. 현대식 건축물과 전통 요새가 합쳐진 거리의 풍경은 ‘아부다비 고유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기술 성장’이라는 이곳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듯했습니다.
지난달 9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알 히슨 거리. 각양각색의 고층 건물이 솟아있다. 아부다비=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기자는 여러 건축물 중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본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이뤄진 정직하게 ‘네모반듯한’ 모습을 띤 이 건물은 ‘소소익선(小小益善)이라는 회사의 좌우명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ADNOC 본사는 LED 조명을 활용해 전기 소비를 줄이는 등 세계 건물 에너지 소비량 표준보다 약 24% 적게 에너지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ADNOC 본사는 미국그린빌딩협회(USGBC) 주최 친환경·저탄소 건축물 평가인증제인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에서 상위 등급인 ‘골드 인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ADNOC 본사는 어쩌면 아부다비의 미래를 시각화한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아부다비는 석유 생산국 중 가장 먼저 ‘탈(脫)석유’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한 국가입니다. 실제 이러한 선언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부다비통계청(SCAD) 등에 따르면 지난해 아부다비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은 비석유 부문에서 나왔습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아부다비의 비(非)석유 GDP(국가총생산) 성장률은 7.7%로, 이는 아부다비 내 전체 경제 성장률인 1%를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AI 국가주의’ 선두 주자, 아부다비
여기서 잠깐! 아부다비는 UAE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하나이자 UAE의 수도입니다. 면적은 6만7340㎢로 전체 UAE의 약 87%를 차지합니다. 인구는 약 200만 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90% 수준으로 해외 인력 유입률이 높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아부다비 내 원유 매장량은 약 920억 배럴로 추정됩니다. 이는 전체 UAE 매장량(1070억 배럴)의 86% 수준으로, UAE 원유 수출의 대부분을 아부다비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석유가 단 한 배럴만 남아 있는 ‘최후의 순간’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 사무총장.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 제공.
지난달 11일 아부다비에서 만난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 사무총장은 본보와의 공통 인터뷰에서 아부다비의 탈석유 경제 전략에 대해 이같이 전했습니다. “아부다비는 ‘지식 경제와 기술’이라는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알 반나이 사무총장은 전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가 석유 산업 중심의 성장, 두 번째 단계가 금융 및 관광 분야에서의 투자였다면 지금 아부다비는 인공지능(AI) 등 딥테크 분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ATRC는 아부다비의 기술혁신을 이끄는 국영 첨단 기술 연구기관입니다. 셰이크 칼리드 빈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직접 의장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전 세계 70개 이상 국가에서 1000명 이상 연구원이 이곳에서 인공지능(AI)과 바이오·헬스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체 연구원 중 55%가 여성인 점도 인상 깊습니다.
주목할 점은 ATRC가 공개한 두 모델이 완전한 ‘오픈소스 모델’이라는 점입니다. 일반 사용자는 물론 연구나 상업적 용도에까지 ‘전면 개방’을 선언한 셈입니다. 오픈소스 모델의 경우 사용 기업은 AI 제공 기업에 데이터를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 반나이 사무총장은 “모든 기업 데이터는 비공개로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접근할 수 없다”며 “이는 소수의 기업이 AI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아부다비의 신념”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11월 UAE 최초 AI기업 ‘AI71’ 출범 발표회에서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첨단기술연구위원회 사무총장이 발표하고 있다.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 제공.
알 반나이 사무총장은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환영한다”며 긍정적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대학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등 (한국의) 우수한 인재를 모집하고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추후 팰컨 기반 서비스에 대한 협력도 열어두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국민 60% 자발적 생체 데이터 제공…“‘에미라티’ 맞춤 의료 체제 정립할 것”
UAE는 2021년부터 국영 기업인 G42 헬스케어(현 M42)를 필두로 ‘에미라티(UAE 자국민) 게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핵심 목표는 100만 명에 달하는 UAE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전장유전체분석(WGS)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UAE 국민 전체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에미라티 유전자 지도(Emirati Genetic Map)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완성된 지도를 바탕으로 유전병이나 장애 등 돌연변이 발생을 최소화하며, 유전적 특성에 맞는 개인별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입니다.아부다비 국영 헬스케어 기업 M42에서 실험 중인 한 연구원.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 제공.
M42 측은 지난달 기준 약 57만 개 유전자 샘플을 이미 모았다고 전했습니다. 어른은 물론 갓 태어난 신생아의 유전자 샘플도 부모가 자발적으로 제공한다고 합니다. 알바라 엘카니 M42 운영 부문 선임이사는 “가장 짧은 기간 가장 빠른 속도로 샘플을 모았다. 경이로운(incredible) 수준”이라며 “모든 건 자발적(volunteer)이었다. 이는 지도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두텁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기자가 인상깊게 들었던 부분은 아흐마드 알 아와드히 M42 커뮤니티 아웃리치 디렉터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제약업계에서 활용하는 참조 게놈은 유럽, 북미 등의 백인(Caucasian) 게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며 “에미라티 ‘맞춤’ 참조 게놈을 개발해 어떤 약물이 가장 효과가 있는지 등을 연구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가 주도의 생체 데이터 수집이 사생활 침해 등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기자는 10년 후 UAE의 의료 체계가 어떻게 진화했을지 판단하려고 합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