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시켰는데 커다란 지방 덩어리가 나왔다.” 삼겹살은 고소한 비계 맛으로 먹는다지만 비계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는 오랜 논쟁거리다. 아무리 그래도 하얀 도화지에 붉은 붓으로 한 줄 직 그은 듯한 수준은 곤란하다. 포장을 뜯었더니 비곗덩어리뿐이라는 원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대형마트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삼겹살 선별기까지 등장했다. 삼겹살의 단면을 분석해 살코기와 지방의 비중을 확인하고, 과지방 삼겹살을 골라내는 기술이다.
▷삼겹살 선별에 AI를 활용하는 건 그만큼 소비자들이 품질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3월 3일 ‘삼겹살 데이’ 20주년을 맞아 유통업계가 대대적 반값 할인행사에 나섰는데 도를 넘은 비곗덩어리 삼겹살 때문에 분통을 터트린 사람들이 많았다. 반 이상이 기름이었으니 사실상 제값 주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에는 수도권 한 지역에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보낸 삼겹살의 3분의 2가 비계여서 항의가 빗발쳤다.
▷눈속임 상술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 식자재마트 등 유통채널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윗부분의 때깔 고운 고기를 보고 구매했는데 포장을 뜯어 들춰보니 비곗덩어리만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한 소비자들이 ‘삼겹살 밑장 깔기’라며 분노했다. ‘먹는 게 아니라 불판을 닦거나 김치를 굽는 용도’ ‘고기 대신 기름을 샀다’는 불만도 많았다. 정부가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배포하고 품질관리 실태 특별점검에 나섰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비계가 많다고 하소연해도 업체에선 ‘비계가 많아야 맛이 좋다’고 하거나, ‘단순 변심’이라며 반품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지방 함량에 따라 삼겹살을 세분해서 판매하고, 판매대나 포장지에 정보를 표시하면 어떨까. 세종시의 한 마트에선 지방 함량이 많은 것은 ‘풍미삼겹’, 중간 정도는 ‘꽃삼겹’, 적은 것은 ‘웰빙삼겹’ 등으로 구분해서 팔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솔푸드로 불리며 사랑받는 삼겹살이 AI 감별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불신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