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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국내 의료 시스템의 6가지 문제점

입력 | 2024-02-28 03:00:00

허재택 전 베트남 두이탄대 의과대학 이사회 의장




허재택 전 베트남 두이탄대 의과대학 이사회 의장

필자는 1973년 의대에 입학한 이후 반세기 동안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50년을 돌아볼 때 국내 의료 시스템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과도한 수도권의 대형 병원 설립이 의료계에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수도권 대형 병원에는 의사들이 선호하는 진료과들이 대부분 운영된다. 의사들은 대형 병원에서 수련하고 근무하기 위해 수도권 근무를 희망한다. 최근에는 대학병원 11곳이 수도권에 분원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만 병상 6600개가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쏟아지는 ‘명의’ 관련 방송 프로그램 등 언론 매체를 통해 수도권 의사들이 전국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이들의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향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지방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의사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물론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황이다.

환자를 많이 진료한 의사가 명의가 될 가능성이 큰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골든타임’ 내에 치료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선 가까이 있는 의사가 가장 필요한 명의다.

셋째,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들은 8가지 중대 위반 사항이 아니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받아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들은 수술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고의나 과실이 아닌데 의사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의사들이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을 할 순 없다.

넷째, 지방 환자들이 서울로 이동해 진료를 받는다면 시간과 비용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게 발생한다.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지방 병원에 투자된 의료 장비와 시설은 낭비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다섯째, 필수 진료 과목 의사들은 정말 생활이 고되고 힘들다. 생활이 불규칙적이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많아 스트레스도 크다. 365일 24시간 대기, 저수가, 법적 부담 등 이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이 한국의 10배 이상이다.

마지막으로 의사 양성은 일반적인 대학 교과과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냥 가르치고 배우는 수준이 아니다. 먼저 방대한 양의 의학 지식을 습득한 다음 임상 실습도 받아야 한다. 임상 실습은 구체적인 실습 지침에 따라 정교하게 이뤄진다. 각 대학이 무리하게 인원을 늘리거나 새 의대를 만들면 폐교한 서남대 사태가 다시 현실로 올 수 있다.

현재 다양한 의료계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 범위 안에서 정교한 의료 정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세계가 부러워하는 의료 시스템을 갖춘 한국이 불필요한 혼란을 겪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밝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각 주체가 겸허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허재택 전 베트남 두이탄대 의과대학 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