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접어드는 남자 배우가 뒤늦게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2019년 방영작 tvN ‘60일, 지정생존자’ 속에서 청와대 식구였던 손석구와 이무생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달라도 너무 다른 ‘구씨’와 ‘이무생로랑’ 비교 분석.
추앙하고 싶은 남자
손석구
손석구
올 2월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도 심상치 않다. 공개 사흘 만에 31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으며, 2월 2주 차 글로벌 톱 10 비영어 TV 부문 2위에 올랐다. 3월 27일에는 영화 ‘댓글부대’로 관객들과 만난다. 올봄, 또 다시 손석구를 추앙할 시간이 된 것이다.
연기력
“동시에 여러 작품을 촬영할 때 더 집중이 잘된다”는 독특한 연기관 덕분에 출발은 늦었어도 지금까지 수많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캐릭터는 ‘나의 해방일지’의 사연 있는 남자 구씨다. 영화 ‘뺑반’ 한준희 감독, ‘60일, 지정생존자’ 유종석 감독이 손석구를 캐스팅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tvN ‘마더’의 소름 끼치는 악역 이설악 캐릭터도 만만치 않은 충격을 안겼으나, 여심을 흔든 건 역시 구씨다. 특히 15회에서 본업(?)으로 돌아가 깔끔하게 셔츠 차림을 한 구자경이 여전히 투박한 말투로 염미정(김지원)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손석구가 아니면 안 됐다. “이것만은 알아둬라. 나 너 진짜 좋아했다. 나중에 내가 어떻게 망가져 있을지 나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봐도 서울역에 있을 것 같은데, 뭐 그 전에 확 끝날 수 있으면 땡큔데… 나 너 진짜 좋아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상속자들’ 속 김탄의 의문형 고백 “나 너 좋아하냐?” 뒤를 이를 과거형 고백 “나 너 진짜 좋아했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상남자력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희준은 손석구에 대해 “손석구는 목욕탕에서 나는 엄청 센 남자 스킨 향이 난다. 저건 그냥 호르몬이다”라면서 ”혼자 손석구를 따라 하기도 했다. 섹시해서 부럽더라. 건강한 질투를 했다”고 칭찬했다. 동성이 봤을 때 남성적 매력이 이 정도면 말 다 했다.
사진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쇼박스, 에일리언컴퍼니 블로그, 손석구 SNS, tvN 드라마 SNS
외모
전형적인 미남형은 아니다. 잘못 산 물건 환불받으러 갈 때 데려가고 싶은데, 가서 웃을까 봐 못 데려갈 상이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눈빛이 매섭다. 그런데 웃으면 무쌍의 눈이 선으로 바뀌면서 만화 속 ‘실눈캐’가 된다. 다만 만화에서는 평소 온화한 실눈캐가 눈을 제대로 뜨면 무서워지지만, 손석구는 반대다. 스스로도 이를 알아 예전에는 “웃으면 ‘바보’ 같아서 잘 안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갭이 오늘날의 손석구를 이룬 8할이다.
패션
평소 빈티지 스타일의 편한 캐주얼 차림을 즐겨 하지만 외국물 먹은 ‘미대 오빠’답게 한 끗 차 센스를 발휘한다. 볼캡, 비니, 선글라스 등 소품과 포인트 색상을 잘 활용하는 편. 패션에 관심이 많아 패션 분야 스타트업인 ‘공기와물’에 투자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공기와물에서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레리치’의 슈트를 주로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궁금한 게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다.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친분 없는 이병헌의 연락처를 구해 궁금했던 점을 물은 적도 있다. 자신이 이병헌의 작품을 20년 동안 지겨워하지 않고 봐온 것으로 미루어 이병헌은 어떤 노하우를 알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보이기론 다크한 이미지지만 “나이 먹으면서 말수도 많아지는 것 같고,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하고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한다.
재력
손석구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다가 몇 해 전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일궈온 가업이기에 지분은 갖고 있다. 올 초에는 1인 기획사 겸 제작사를 차렸다.
또 손석구는 꿈도 많고 실행력도 뛰어나 이것저것 많이 도전했던 과거사 부자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 간 손석구는 당시만 해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 시카고예술대학에 입학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던 그의 장래 희망이 느닷없이 농구선수로 바뀐 시기는 군 복무 중이었다.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부대에 파병 지원을 다녀온 후 스물여섯 뒤늦은 나이에 캐나다로 농구를 배우러 떠났다가 심심해 다니기 시작한 연기학원에서 적성을 찾았다. 재력이 뒷받침되는 꿈 부자라 하마터면 손석구를 못 볼 뻔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남자
이무생
이무생
연기력
초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이무생은 세종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해 배우 이순재에게 연기를 배웠다. 이후 연극 무대를 통해 기본기를 다지며 2006년 영화 ‘방과후 옥상’으로 데뷔했다. 한눈팔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이무생의 강점은 섬세함이다. 차근차근 밟아왔기에 뭘 어떻게 더하고 덜해야 하는지 안다. 똑같이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는 순정남이어도 ‘부부의 세계’에서는 이성적으로 기다릴 줄 아는 순애보로, ‘마에스트라’에서는 차세음을 향한 ‘집착 광공’(좋아하는 상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캐릭터를 이르는 신조어) 스타일로 변주가 가능하다. 특히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오케스트라 정도는 인수해버리는 ‘마에스트라’ 유정재 역은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러나 “먹는 거 보기만 하면 안 되겠니?” “나랑 놀자” 등의 대사를 능글맞게 해내며 오히려 유정재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상남자력
상남자와 거리가 먼 외모지만 학창 시절 육상부 선수를 했을 만큼 운동을 좋아하고 잘한다. 군 대회에서 높이뛰기와 100m달리기 종목에 출전해 순위권에 올라 도 대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농구부에 들어가 시 연합 대회에서 준우승한 경험도 있다. 농구 실력은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의견 대립이 있는 손석구와 한판 붙는 장면으로 야무지게 써먹었다. 태권도와 합기도도 각각 2단이다. 다만 갈고닦은 이 날렵함을 연기에서 많이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 30kg 갑옷을 입고 벌이는 전쟁 영화 말고, 눈 다 가린 버킷 해트를 쓰고 범죄 저지르는 모습 말고, 라이더 재킷 입고 질주해 돌려차기로 범인 잡는 이무생표 선한 액션 연기가 보고 싶다.
사진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쇼박스, 에일리언컴퍼니 블로그, tvN 드라마 SNS
외모
살짝 처진 눈매와 눈두덩에 지방이 별로 없어 깊어 보이는 아이홀은 이무생만의 올바르고 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무생은 헤어스타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마를 완전히 드러낸 ‘완깐’을 했을 때는 인물이 훤하다는 느낌이 강하고, 앞머리로 이마를 덮은 ‘덮머’는 순박함 그 자체다. 적당히 앞머리를 반만 내린 ‘반깐’은 각도에 따라 잘생김에 사연 있어 보이는 느낌이 추가된다.
패션
‘옷걸이’가 워낙 좋다. 183cm 훤칠한 키와 긴 다리, 러닝과 맨몸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가 슈트 핏을 완성한다. 특히 얼마 전에 종영한 ‘마에스트라’에서 똘끼 있는 재벌 역할을 맡아 20벌 이상의 화려한 의상을 마음껏 선보였다. 스트라이프와 체크 패턴 슈트, 광택 있는 실크 셔츠 등 그간 볼 수 없었던 패션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 시청자들에게 ‘마에스트라’ 보는 재미 중 하나로 손꼽혔다.
성격
이무생은 드라마 ‘서른, 아홉’ 종영 인터뷰에서 “인간은 어느 정도 우유부단함이 다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 역시도 우유부단한 면이 있다”며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때도 우유부단하다면 자신을 포함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겠지만, 선택을 한 이후에는 선택한 대로 직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외유내강 타입인 이무생은 낯을 가리는 편이다. 친해져야 말을 많이 한다고. 이런 성격이기에 평소 못 해본 텐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는 연기가 재미있고 설레는 게 아닐까. “어떤 역할을 주든 ‘이무생화’해 나름 어떤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는 이무생이다.
재력
생로랑이 의인화한 듯한 고급스러운 느낌과 달리 실제 이무생은 데뷔 이후 13년 동안 연 수입이 2000만 원 미만이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아내와 2011년 결혼해 슬하에 두 살 터울의 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늘 신경이 쓰였을 터. 이무생은 반응이 뜨거웠던 ‘60일, 지정생존자’ 종영 후 “기다려준 부모님과 아내에게 특히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윤혜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