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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빌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6〉

입력 | 2024-02-27 23:21:00


청소 업체를 위해 일하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 둘은 청소하다가 만난 사이다. 하나는 청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돌한 젊은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 경험이 많은 소심한 사람이다. 나이는 10년쯤 차이가 난다. 따질 일 있으면 따지고 할 말이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젊은이가 묻는다.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냐.” “받는 돈은 똑같은데 몇 배나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으냐.” 젊은이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뭔가 이유를 대며 일당을 깎으려 드는 업체 사장, 어떻게든 쉬운 일만 골라서 하려 드는 사람들, 청소 후에 까탈을 부리는 집주인 등으로 인해 울화통이 터지는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선배에게 불행하거나 억울하지 않으냐고 물은 거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젊은이는 그 말에 황당해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축복은 무슨 얼어 죽을 축복인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해야지 억울하지도 않다는 말인가. 선배의 말이 이어진다.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 그렇다고 그 선배가 모든 것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억울하거나 화날 때가 왜 없겠는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집을 청소할 때는 그 집에 살게 될 사람에게 좋은 일 많이 생기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다는 거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축복을 비는 마음’에 나오는 장면이다. 누군가가 우리의 집을 청소하면서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주고받음의 경제학, 즉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는 차가운 경제학 원리에 익숙한 탓일지 모른다. 그래서 고마움을 모르는 것일까. 소설은 경제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상식적이지만 자칫 잊기 쉬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의와 호의로 산다. 다만 그걸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잊고 있을 따름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