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공약 팩트체크] 총선 공통공약 5건중 3건 ‘재활용’ 한부모 양육비 선지급 2020년 발의 경로당 무료점심 관련 법안만 12건 “법안 방치하다 유권자 눈속임” 지적
여야가 4·10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공통 공약 5개 중 3개는 21대 국회에서 이미 관련 법안 25건이 발의됐음에도 손을 놓은 채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부모 양육비 국가 선지급’ 공약은 21대 국회 초반인 2020년 7월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가 임박한 지금까지 국회 임기 4년 내내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법안 처리를 외면하다 이제 와 총선용 민생 공약으로 새것인 것처럼 ‘재포장’해 유권자를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가 내놓은 공통 공약 중 법안 처리가 미뤄진 공약은 ‘간병비 급여화’와 ‘경로당 주 5일 이상 점심’ ‘한부모 양육비 국가 선지급’ 등 3개다. 나머지 공통 공약인 ‘철도 지하화’는 관련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정책자금을 2배 상향하는 ‘소상공인 지원 공약’은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 않았다.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공약은 2022년 9월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이 발의한 뒤 1년 6개월 동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다른 관련 법안 3건도 마찬가지다.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필수의료 등 주요 법안이 우선시되면서 순위에서 밀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복지위 소속이 아닌 의원들이 주로 발의해 법안이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말했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할 때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채무자에게 추징하는 ‘한부모 양육비 국가 선지급’은 2020년 7월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안건으로만 여러 차례 올라왔을 뿐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정쟁에 급급했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새로운 것처럼 선거 때 다시 내놓은 것”이라며 “환심 사기용으로 유권자를 속이는 공약에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간병비 건보’ 법안 1년반 뭉개다가, 총선앞 앞다퉈 “지급” 공약
‘헌 법안’ 재포장한 與野
경로당 무료점심도 법안처리 안해
전문가 “21대 국회, 왜 추진 못했나
설명 없으면 또다시 空約 될수도… 공약 내기 전에 반성문부터 써야”
경로당 무료점심도 법안처리 안해
전문가 “21대 국회, 왜 추진 못했나
설명 없으면 또다시 空約 될수도… 공약 내기 전에 반성문부터 써야”
“더불어민주당은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이자 아동 학대의 문제라고 인식한다.”(2월 20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악질적으로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는 채무자의 미지급 양육비를 정부가 선(先)지급하고 채무자에게 후(後)추징하겠다.”(2월 23일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
총선을 앞두고 최근 여야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앞다퉈 목소리를 높였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로 인해 아이가 피해를 봐선 안 된다며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대신 지급한 뒤 채무자에게서 양육비를 돌려받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 강력한 실천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했고, 민주당은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성 강화 및 국가적 시스템 마련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이미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2020년 7월∼2023년 4월 해당 내용을 담은 법안 9건이 발의됐던 것. 그럼에도 여야는 21대 국회 임기 내내 “양육자가 줄어들 수 있다” “징수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등의 이유를 대며 법안 논의에 미온적이었다. 정치권에선 “정작 일해야 할 땐 손놓고 있다가 선거철이 되니 다시 공약 경쟁을 펼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 공약 발표 날 열린 회의서도 ‘일단 보류’
27일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내놓은 공통 총선 공약 가운데 △한부모 가정 양육비 선지급 △간병비 급여화 △경로당 주 5일 이상 점심 제공 등 3개는 관련 법안이 21대 국회에서만 25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모두 국회 논의 단계에 멈춰 있다.
양육비 선지급 공약의 경우 2020년 7월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뒤 21대 국회 임기 내내인 3년 7개월 동안 사실상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9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여야 의원들은 이 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여가위 소위 구성 등만 논의하다가 회의를 끝냈다. 9개 법안 중 3개 법안은 발의만 됐을 뿐 단 한 차례의 회의 일정도 갖지 않았다.
여야가 공약을 발표하던 시점인 이달 21, 23일 여가위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에도 양육비 선지급 문제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여야는 법안을 계속 심사해야 한다는 데만 의견을 모았다. 그동안 여가위 수석전문위원 측은 “기존 양육비 이행 확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선지급 제도를 도입하면 정책 부작용과 국가재정 부담 가중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던 상황이었고, 여야 역시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야 지도부가 공약으로 관심을 갖자 뒤늦게 회의만 열고 본 셈이다.
● “21대 국회서 방치한 반성문부터 써야”
여야의 다른 공통 공약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민의힘은 이달 6일 간병비 부담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총선 1호 공약으로 같은 공약을 제시했다. 이 공약 역시 2022년 9월부터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이 4건 발의돼 있다. 이 중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오른 법안은 한 건도 없다. 법안 논의의 첫발도 떼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솔직히 다른 법안들 때문에 밀려 있다”며 “의원실마다 법안 한두 개 정도를 우선 법안으로 올리는데,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로당 주 5일 이상 점심 공약과 유사한 법안들은 21대 국회에서 12개가 올라왔다. 이 법안들에 대해선 정부가 ‘불수용’ 또는 ‘신중 검토’ 등의 의견을 내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다그치면서도 그동안 실제로 법안 처리에는 나서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미 논의했어야 할 법안을 왜 다시 들고나왔는지 “반성문부터 쓰라”고 지적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1대에 왜 추진하지 못했는지, 지금은 왜 하려고 하는 건지 설명이 없으면 또다시 공약(空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