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위해 증오발언 공천기준 삭제 총선 실패해도 대선 승리하면 성공 “私人정당화가 한국 정당의 큰 문제” 불명예 공관위원장 자리 물러나시라
‘문재인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노무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는 것이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이 고려대 교수 시절인 2012년 11월 동아일보 ‘동아광장’에 쓴 칼럼 중 한 대목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여당 후보의 패배는 민주당 대참패일 뿐 아니라 노무현 통치에 대한 총체적인 국민적 부정이었다고 임혁백은 썼다. 그럼에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노 정부 유산 계승을 선거구호로 내세웠고 캠프는 ‘노빠’로 가득하니 선택은 국민 몫이라는 매서운 내용이었다.
그랬던 임혁백이 28일 서울 종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를 단수 공천했다. 작년 12월 출마 선언하며 “저는 노무현의 사위로 알려진 사람으로 노무현 정치를 계승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했던 곽상언을 공천한 거다.
그러나 안타깝다. 임혁백의 언동이 막돼서 망나니라는 게 아니고 글과 행동이 달라지는 게 석학답지 않다. 그는 달랑 칼럼 한 편만으로 노 정권을 비판한 게 아니다. 2006년 ‘좋은정책포럼’을 발족해 “한국 진보세력이 정체적 위기, 수권능력 위기, 평화관리 위기의 삼중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하는 등 노 정권 실정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했다.
그래 놓고 자신이 비판한 노 정권을 계승하겠다는 노무현 사위를 ‘선거구 세습’시켜 공천한 것은 전근대적 처사다. 굳이 저서에 맞춰 본다면, 근대성을 완결하고 탈근대로 진입해야 할 시기에 공화주의적 가치관과 사회적 신뢰를 깨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상한 공천은 곽상언만이 아니다. 임혁백의 학자적 양심과 공관위원장의 양식을 무너뜨리는 공천이 한두 곳이 아니다. 곽상언은 이재명의 경쟁자가 아니어서 괜찮을지 몰라도 임혁백은 자기 말까지 뒤집으며 당 대표 이재명을 닮아가고 있다. 심지어 학계에선 석학 임혁백이 달라졌다며 우려가 번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임혁백은 “실질적 심사는 내가 한다. 계파에 관계없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정치학자 임혁백이었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임혁백은 ‘이기는 공천’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완전 ‘지는 공천’을 한다.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왜 진보적 민주주의 석학이 뒤늦게 이토록 말도 안 되는 공관위원장을 고수하는 것일까. 자신의 ‘방탄’만이 중요한 이재명은 석학 방패막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친명으로 똘똘 뭉칠 수만 있다면, 총선 패배도 상관없다. 대선에서 이기면 그 많은 사법 리스크쯤 ‘셀프 사면’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터다.
임혁백은 2022년 한 인터뷰에서 한국 정당의 가장 큰 문제가 ‘사인(私人) 정당화’라고 했다. 박용진 의원에게 하위 10%를 알리면서 “나도 (이유를 모르고) 통보만 한다” 할 만큼 임혁백은 이재명 사당(私黨)에서 허수아비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공익, 공적 덕성의 지배다. 이재명에게는 그게 없다. 아니라고? 임혁백이 이재명에게 총선 불출마를 요구해 보시라. 그럼 알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럴 리 없겠지만 지난 대선 때 이재명의 지지 그룹에 몸담았던 임혁백이 총리라도 시켜준다는 약속을 받고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라도 그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바란다. 설령 이재명이 다음 정부 대통령이 된대도 그는 “총리 시켜준다 했다고 정말 시켜줄 줄 알았느냐”고 할 사람이다. “박근혜를 존경한다고 했다고 정말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던 걸 잊었는가.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