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광주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4분기(10~12월)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영국 BBC가 그 배경을 집중 조명했다.
28일(현지시간) BBC는 한국 통계청의 출산율 발표에 맞춰 서울 특파원 발로 ‘한국 여성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BBC는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들의 필요는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지난 1년간 전국을 다니며 한국 여성을 인터뷰했다”고 취재 경위를 밝혔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예진 씨(30)는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다”며 “혼자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평가는 친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7세 딸과 4세 아들을 키운다는 정연 씨는 출산 후 사회·경제적 압박을 받았고 남편은 도와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린이 영어학원 강사 스텔라 씨(39)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느냐’는 물음에 눈빛으로 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예진 씨는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다”며 여동생과 뉴스 진행자 2명이 퇴사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한 28세 여성은 육아휴직 후 해고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는 경우를 봤다며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밝혔다.
스텔라 씨는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일과 육아의 병행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를 낳기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높은 주거비와 사교육비도 저출산 원인으로 꼽혔다. 스텔라 씨는 “집값이 너무 비싸 감당할 수 없다”며 “서울에서 점점 더 멀리 밀려나고 있지만,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등의 비싼 수업을 받게 하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도 ‘독특하다’고 BBC는 평가했다.
스텔라 씨는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700파운드(120만 원)까지 쓰는 걸 봤는데 이런 걸 안 하면 아이들이 뒤처진다”고 했다. 부산에 사는 민지 씨(32)는 어릴 때부터 20대까지 공부하면서 너무 지쳤으며 한국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털어놨다.
BBC는 한국 여성들의 교육과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지위와 야망이 커지는 등 가치관 변화와 사회적 요인이 저출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날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1년 전보다 0.05명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부부 100쌍(200명)에 자녀 수가 65명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은 2013년부터 1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출산율 꼴찌를 이어가고 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0명대 출산율을 보이는 국가는 6년째 한국뿐이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