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샹들리에가 빛나는 웅장한 공연장이 낯설어 두리번거렸다. 유니버설발레단 무대를 직관하다니. 무대에서 춤추는 발레리노가 나의 제자라니. 가슴이 뛰었다. 모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칠 때, 첫 제자로 스물두 살 발레리노를 만났다. 여섯 살 때부터 시작한 발레는 그의 인생 전부였다. 그저 좋아서 계속 춤을 췄다. 열두 살에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랐고, 발레에만 전념하고 싶어서 대학 진학까지 포기했다. 콩쿠르와 발레단에서 활약하며 유망주로 주목받던 그에게,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그는 인상 깊은 학생이었다. 질문과 사유가 풍부했다. 매사 끈기 있고 성실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무용 동작을 마스터하듯 시도하고 단련해서 제 것으로 만들어 왔다. 글쓰기는 나날이 좋아졌다. 깜깜한 지금을 썼고, 씩씩했던 과거를 썼다. 보여주고픈 춤과 하고픈 예술과 꿈꾸는 미래를 썼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글 쓰며 삶을 돌아보고 돌보았다. 꾸밈없이 진솔한 글이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나누며 교우했다.
‘밤의 사색’이란 책에 헤르만 헤세의 문장을 적어 선물했다. 헤세는 홀로 밤을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불행에도 지지 않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씨앗을 틔운다. 혹독한 밤을 지나며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힘껏 줄기를 일으켜 자기만의 꽃을 피운다. 넌 어떻게 피어날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겐 꽃을. 고유한 작품을 꽃피운 나의 제자에게 프리지어를 안겨 주었다. 프리지어의 꽃말은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다가올 너의 모든 앞날에 나는 꽃을 보낼게. 순도 100%의 마음을 건네며 마음껏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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