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태극기를 처음 유심히 본 건 1996년 여름, 천안 독립기념관에서였다. 당시 나는 전국을 한 바퀴 돌며 한국의 주요 역사 및 문화유적지를 방문하는 대학교 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도 그중 한 곳이었다. 도착해서 보니 진입로 양옆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내 눈에 태극기는 흥미로운 기하학적 패턴을 갖고 있는데, 그런 디자인이 일렬로 무한 반복되니 그 독특한 멋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
그 이후로 태극기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등장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에서 태극전사를 응원했을 때 태극기는 내 볼 한쪽에 크게 그려져 있었다. 자전거 라이딩을 갈 때마다 구리 한강시민공원에서는 펄럭이는 거대한 태극기를 마주할 수 있었고,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 시작 전 애국가를 부를 때는 붉은 악마가 휘두르는 태극기를 볼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태극기 전시를 했을 때 나는 아주 특별한 태극기를 만났다. 김붕준 선생 부인이신 노영재 애국지사가 손수 만든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1호)의 복제품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하루라도 지내본 사람이라면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역사를 모를 수 없다.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이 합당한 제도를 갖춘 자주독립 국가로 서게 하기 위해 이 태극기를 쥐고 온갖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임시 청사 위를 펄럭이는 태극기를 상상해 본다. 나는 그것이 드러내 놓고 일본을 경멸한 도발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또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에게 잡힌 영국 포로들의 노력을 떠올리게 한다. 포로수용소의 상황은 극도로 가혹했고, 소위 ‘죽음의 철도’를 놓기 위한 강제노동과 고민이 거셌지만, 영국군 포로들은 사기를 잃지 않기 위해 비밀리에 영국 유니언 잭 깃발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경례했다고 한다. 국기는 침대의 흰색 천, 모기장의 파란색 천, 인도네시아 군인 모자의 안감에서 떼어낸 빨간색 천을 이용해 손수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유니언 잭을 가슴에 품은 영국 전쟁 포로들이 생환 의지를 계속 다질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의 태극기 휘날리기도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계속 불타오르게 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영국의 역사는 대부분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가끔 두 국가의 역사에서 공통된 경험을 찾을 때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어떤 동지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엔 태극기를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애국지사들의 손바느질로 탄생한 임시정부 태극기에 담긴 자주독립의 노력과 그 의미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꿈과 이상을 우리가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지 되새겨보면 어떨까.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