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를 앞둔 일주일 동안은 밤에 잠도 오지 않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을 설쳤다. 회사에 출근해 있는 동안 침착하게 남은 일들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마음은 들떠 있었고 시간은 또 왜 이리 더디게 가는지, 하루하루가 불편하기만 했다. 겨우 8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는 데도 이렇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데 20∼30년씩 다닌 분들은 기분이 어떨까. 마지막 날 아침, 사무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데 제일 많은 자리를 차지한 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받은 명함이었다. 대충 세어보니 1500장이 넘었다. 영업사원도 아닌데 참 많은 사람을 만났구나. 그중에는 친한 선후배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명함이랑 이름만 봐서는 누군지 잘 모르겠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결국 명함만 남는 거구나’ 생각하니 학창 시절 읽은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제목이 떠올랐다.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결국 지난 8년 동안 나의 직장생활은 ‘1500장의 명함으로 남은 사내’로 기록될 것 같았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퇴사 기념 꽃다발을 받고 그날 저녁,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아내는 나에게 새로운 지갑을 선물했고 딸은 나에게 편지를 써서 건넸다. 퇴사하면 기분이 우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물론 아직 퇴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시간도 없었지만, 아무튼 기분은 상쾌했다. 그리고 늦은 밤, 혼자 거실에 앉아 꽃다발을 바라보는데 여러 추억이 떠올랐다. 내 인생에서 꽃다발을 받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기억해 보니 일단 초등학교 졸업식 때가 떠올랐다. 엄마가 학교 앞에서 사 주신 울긋불긋한 꽃다발을 들고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 그리고 중학교 교문 앞에서 엄마가 주신 꽃다발을 들고 사진 찍었던 기억.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잘 기억이 나질 않고, 대학교 졸업식 때 엄마가 사 주신 꽃다발을 들고 동기들이랑 사진 찍었던 기억. 생각해 보니 그동안 꽃다발은 모두 엄마가 주셨고 꽃다발을 받았던 건 대부분 졸업식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끝이기도 하고 또 시작이기도 한 그 시점에서 받은 꽃다발. 흔히 축하할 일이 있거나 고백할 일이 있을 때 꽃다발을 주고받지만 그 꽃다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퇴사하며 받은 꽃다발을 한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그동안 고생했고, 앞으로 어떤 비바람이 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대, 반드시 피어나시라! 그대는 꽃처럼, 아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다. 그러니 그대, 반드시 피어나시라, 졸업과 입학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그대가 받은 그 꽃다발은 그대를 향한 활짝 핀 응원이라는 걸 꼭 기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