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65명’ 주요국 언론 주목 NHK “집값 등 경제적 부담 원인” BBC “여성의 사회참여 늘었지만 아내-어머니 역할 50년째 그대로”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한국의 출산율 급감을 다룬 영국 BBC방송의 온라인 기사 화면. 과도한 사교육비, 남성의 저조한 육아 분담 등을 그 이유로 지목했다. BBC 웹사이트 캡처
“15년간 280조 원을 썼지만 저출산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일본 요미우리신문)
“정책 입안자들이 청년과 여성 얘기를 듣지 않는다.”(영국 BBC)
지난해 4분기(10∼12월)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6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선진국 주요 언론은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주요 국가들에서 모두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지만 한국은 유독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곤두박질치고 있어서다.
● “노키즈존-학원 뺑뺑이에 한국 탈출”
일본 아사히신문은 29일 ‘한국 초저출산 사회의 실상’을 주제로 8회 분량의 심층 보도 시리즈 ‘A-스토리’ 연재를 시작했다. 기사에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기업을 다니다가 일본으로 이주한 39세 한국인 여성이 등장했다.
그는 “남편과 둘이 연 1억5000만 원을 벌었는데도 육아 비용 부담이 컸다”며 “젊은이들은 이런 선배들을 보고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국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노키즈존’ 카페, 어릴 때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모습을 짚으며 “한국은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사회가 돼 버린 것 같다”고 했다.
공영방송 NHK 또한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 및 전세금 마련에 부담이 커지고 취업이 불안정해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 “한국 출산율, 세계적으로도 극단적”
영국 BBC방송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한국만큼 극단적이진 않다”며 그 배경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 정책 입안자들이 저출산에 대한 청년과 여성의 실제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자신들이 직접 여러 한국 여성을 인터뷰했다고 소개했다.
30세 TV 프로듀서 예진 씨는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BBC는 “지난 50년간 한국 경제는 여성의 고등교육과 취업을 촉진하고 야망을 확대하는 등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며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난 만큼 여성의 육아와 가사노동이 남성과 분담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단 얘기다.
아이들이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등의 비싼 수업을 받는다며 과도한 사교육 부담도 언급했다. 39세 영어강사 스텔라 씨는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700파운드(약 120만 원)까지 쓰는 걸 봤다”며 많은 부모들이 이런 돈을 쓰지 않으면 아이들이 뒤처진다고 여긴다고 소개했다.
영국 가디언은 “수십억 달러의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인구 위기는 더욱 심화했다”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최저 혼인 건수를 기록한 것과 함께 동아시아 국가의 저출산 현상을 주목했다. 가디언은 “치솟은 육아 비용과 부동산 가격, 양질의 일자리 부족, 극단적인 교육 체제 등으로 출산 유인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고 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