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섬 카와산 폭포 계곡에서 관광객들이 에메랄드빛 계곡물로 뛰어든다. 청정 자연에서 만끽하는 익스트림 레포츠.
필리핀 세부와 보홀은 리조트에서 휴양하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섬이다. 그러나 휴양지였던 섬들이 청정 자연을 탐험하고 아찔한 액티비티(활동)를 즐기는 체험 관광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수백 년 된 나무들로 이뤄진 울창한 숲이 아마존처럼 펼쳐진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고 바다에서 고래상어, 거북이와 함께 헤엄치며 영상을 남기는 여행이다.
● 영화 ‘아바타’ 폭포와 계곡 다이빙
세부섬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리조트 휴양지이자 제2의 도시다. 또한 세부는 세계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섬이기도 하다. 1519년 역사적인 첫 세계일주를 통해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입증한 마젤란이 스페인에서 출발해 남미와 태평양을 거쳐 3년 만에 도착해 숨진 곳이 바로 세부섬이다. 그가 1521년 세부의 추장과 부하 800여 명을 기독교도로 개종시켜 치른 세례식 장면은 세부시청 앞 팔각당 내부 천장 벽화로 남아 있다. 팔각당에는 ‘마젤란 십자가’도 세워져 있다. 마젤란은 막탄섬에서 원주민과 전투하다 목숨을 잃었다. 세부시청이 있는 세부시티는 유럽과 아시아가 절묘하게 혼합된 필리핀 문화의 배경임을 알려주는 스페인 점령기 유산을 볼 수 있는 역사도시다. 마젤란이 선물했던 산토니뇨상(像·어린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는 성 어거스틴 교회, 스페인 침략자에 맞서 싸운 라푸라푸 추장 동상, 스페인 총독이 세운 산페드로 요새 같은 유물과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영화 ‘아바타’ 배경에 영감을 준 투말로그 폭포.
카와산 폭포 계곡에서 밧줄 잡고 다이빙!
석회 성분이 있어 뿌옇다는 계곡물은 초록색 숲과 만나 신비한 터키색 혹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난다. 이 계곡에서 수중 미끄럼틀을 탄다. 절벽 바위에서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며 다이빙을 한다. 높은 나무 줄기에 매달아 놓은 줄을 잡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유튜브 영상에서나 봄 직한 장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탐험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헬멧과 구명조끼, 아쿠아슈즈 같은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집라인(zipline)으로 계곡을 건너간다. 익스트림 레포츠다 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사고 예방. 관광객 1인당 현지인 가이드 한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 준다. 점프 요령을 가르쳐 준다. 물속에서 끌어주며 인도해 준다. 어린이나 청소년부터 중장년층까지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가이드들은 한국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운 “상남자네요!” “대박!” 같은 서툰 한국말로 환호를 보내고 수중 액션카메라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준다.
가이드들의 응원 속에 어느새 3시간가량 걸리는 계곡 코스를 완주한다. 계곡물에 둥둥 떠내려가다 보니 울창한 밀림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이런 각도로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야말로 자연에 파묻혀 하나 된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 고래상어와 헤엄을
가족과 함께 해외에서 다이빙을 해보는 것이 내 오랜 버킷리스트였다. 아내가 2020년 제주 해녀학교에서 물질과 다이빙을 배운 이후 온 가족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동해와 남해, 제주 바닷속을 구경했다. 세부 막탄섬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숍이 많다. 호핑투어(hopping tour)나 스쿠버다이빙을 신청하면 인근 연안에 있는 올랑고섬, 힐루퉁안섬 등의 포인트에 가서 열대어들을 구경할 수 있다. 말미잘 속에 살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 물고기와 미동도 없이 빙글빙글 도는 거대한 잭피시 떼, 마리곤돈 동굴 입구로 비치던 신비스러운 푸른빛과 공기방울은 몽환적인 느낌이다. 막탄섬 인투더블루(In2theblue) 다이빙숍 조항태 강사는 “막탄 앞바다에 아름답게 보존된 산호 정원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라고 말했다. 세부섬 오슬로브 해안 바닷속에서 지구상 가장 큰 어류인 고래상어를 만난다.
가까이에서 본 거대한 고래상어는 감동적이었다. 바닷물을 통과한 찬란한 빛이 고래상어 등 그물무늬 속 흰 점들에 일렁이는 물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상냥한 거인으로 불리는 고래상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다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인기가 높다. 케냐에서는 ‘신이 고래상어 등에 실링 동전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의미에서 파파실링기라고 부른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등에 별이 가득 찬 듯 보인다’는 뜻에서 마로킨타나(많은 별)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슬로브 고래상어는 아침에 밥을 먹은 뒤 하루 종일 큰 바다에 나가서 놀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되돌아온다. 고래상어 덕분에 유명 관광지가 돼 먹고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가족처럼 돌본다고 한다.
●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보홀
세부에서 배로 2시간 거리인 보홀섬은 필리핀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이 제주도 2배 크기로 부속 섬이 70여 개 딸려 있다. 이 중 보홀 남서쪽 팡라오섬이 대표적 관광지다. 보홀국제공항도 팡라오섬에 있다. 이 섬의 가장 넓은 해변인 알로나 비치에는 길게 늘어선 야자수 아래 밤마다 테이블이 놓이고 망고주스와 해산물 요리를 먹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알로나 비치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면 돌고래 떼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돌핀 워칭과 호핑투어, 다이빙 같은 해양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발리카사그섬 바다에서 거북이를 만났다.
보홀섬 명물 타시어 안경원숭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다.
글·사진 세부·보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부 사진 필리핀 관광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