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무 연령 상향, 육아휴직 확대 노인·여성 고용 늘리려 일터 개혁 꾀한 日 임금인상 없이 노동시간 단축… 勞使政 합심 ‘가난한 선진국’ 앞둔 韓, 전방위 개혁 시급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나라에 돈이 없으니 당신도 나가 일하시오.”
지난 10여 년간 일본 국민을 향한 일본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다. 물론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의 방향을 보면 그 뜻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은 자민당이 집권하던 2004년에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후생연금(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을 개혁했다. 민주당이 집권하던 2012년에는 후생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했다. 자민당도 민주당도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정이 어려우니 국민이 이해해 달라는 식이다.
그러나 그런 개혁만으로는 부족했다. 10여 년 전부터는 나라에 돈이 없으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일해서 스스로 돈을 벌라는 식으로 나온다. 지금 일본에서는 정년이 대개 65세인데, 2021년부터 기업은 종업원이 원하는 경우 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많은 기업이 정년을 맞은 직원을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는 식으로 그 의무를 이행한다. 연봉은 많이 삭감되지만 계약직이라도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퇴직자가 많다. 70세까지 월급을 받고 연금 수급 시기를 70세로 늦추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65세 이상 직장인에게서 소득세를 받을 수 있고 연금 지급액은 줄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젊은 여성을 위해서는 일과 가정이 병립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육아휴직을 늘리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성의 노동시간, 여성의 육아휴직만이 아니다. 남녀 모두 직장 생활이 지금보다 더 편해져야 가사와 육아에 함께 참여할 수 있고, 그래야 여성이 일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 관련법이 제정된 이래 “일하는 방식의 개혁”은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되었다. 이제 일본은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짧고, 여성의 고용률은 유럽 선진국보다 높다.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에서 취업자 수는 역대 최다이고, 지난 10년간 정규직 일자리도 대폭 증가했다.
그런데 정부가 아무리 놀지 말고 일하라 해도,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고용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노동조합 그리고 사회가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2012년 민주당 정부가 65세까지 고용 유지 의무를 부과했을 때는 기업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당시는 기업 실적이 부실해서 기업에 여유가 없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있었던 노인의 지하철 무임 승차에 관한 토론에서 “무임 승차를 탓하지 말고 자동화를 통한 인력 감축으로 경영 효율화를 꾀하라”는 말이 나왔다. 효율화를 위한 인력 감축, 많이 듣던 말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은 산업용 로봇의 도입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20대 고용률은 처참하고 노동시간은 길고 노동 강도는 강하다. 그래서 산업재해가 많고 일과 가정을 병립하는 것이 어렵다. 고령화가 심화되면 한국도 일본처럼 가난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지금 고용 확대를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