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20~2021년 제가 기록해뒀던 민주당 계파 분류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봤는데요, 당내 계파 및 모임이 10개에 육박하더군요. (물론 그 새 배신과 의절이 판을 쳤기에 지금 계파와는 또 다릅니다)
②친이해찬=김성환 김태년 윤호중 이해식 조정식 등
③참여정부 출신 친노무현·친문=김종민 김한정 이광재 전재수 홍영표 등
④친정세균=김교흥 김영주 안규백 이원욱 등
⑤친이낙연계=설훈 이개호 전혜숙 등
⑥더좋은미래·운동권·민평련=강훈식 송갑석 우원식 우상호 이인영 인재근 등
⑦친박원순계=기동민 김원이 박홍근 천준호 등
⑧친이재명계=김병욱 김영진 이규민 정성호 등
⑨비문·비주류=박용진 변재일 이상민 조응천 등
⑩더민초=고영인 등 초선 의원 모임
당연히 여러 주장과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의원총회는 물론이고 고위 당정청(당-정부-청와대) 회의, 당정 협의 때마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매번 갈등설이 불거지면 지도부는 “원래 건강한 정당은 일사불란하지 않다. 다양한 목소리가 민주주의”라고 수습하기 바빴죠. 그때는 그런 갈등과 말썽이 나쁜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을 보고 있자면 그때가 나았던 듯싶습니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대표적 ‘비문’으로 찍힌 뒤 더욱 아웃사이더가 됐습니다. 가까운 의원도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함께 한 정성호 의원을 비롯해 김병욱 김영진 등 극히 소수에 불과했죠. 대선 경선 과정에서 과격한 팬덤 활동으로 줄곧 논란을 일으켰던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 ‘손가락혁명군’도 늘 문제 집단으로 분류돼왔고요.
2017년 3월 27일 광주광역시 광주여대에서 열린 민주당 호남권역 대선 경선 투표에서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한 뒤 주먹 쥔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 뒤로 당시 경쟁했던 이재명 대표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동아일보 DB
이재명 대표가 2022년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뒤 당기를 받아 들고 있다. 왼쪽은 우상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동아일보 DB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원내에도 ‘친명 호위무사’, ‘친명 호소인’ 등을 자청하는 ‘신(新)친명’계도 두터워졌습니다. 권리당원 권한 강화 움직임에 그때도 혹시 이 대표가 차기 전당대회 재선을 노리고 미리 손쓰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었죠. 당시엔 ‘설마’하는 생각이었는데 요즘 그의 엄청난 총선 공천 작업을 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습니다.
2017년 1월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 대표가 부인 김혜경 씨와 함께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지모임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22년 6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들머리에 이재명 대표(당시엔 평의원) 지지자들이 보내온 화환들이 놓여있다. 이들은 당시엔 스스로 ‘개딸’이라 칭했다. 동아일보 DB
이 대표가 이렇게 민주당을 점령해가는 사이 다른 계파들은 와해됐습니다. 2022년 6월,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참패하자 이낙연계와 정세균계는 각각 ‘모임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이낙연계’ 이병훈 의원은 “친목 모임 해체 결정이 당내 남아있는 분란의 싹을 도려내고 당이 새로 태어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고, ‘정세균계’인 김영주, 이원욱 의원은 “당내 모든 계파 정치의 자발적 해체만이 당 재건을 이룰 수 있다”고 촉구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자진 해산할 테니, 이재명계도 작작하라’는 거죠. 하지만 이 대표가 누굽니까. 어떻게 점령한 당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이병훈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광주 동남을 경선에서 탈락하고 억울하다며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김영주 의원은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 통보에 반발하며 탈당을 선언해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이원욱 의원은 일찌감치 “이재명 너 밑에선 아무것도 안 하련다”며 가장 먼저 탈당했죠.
2022년 6월 정세균계 김영주 의원(오른쪽)과 이원욱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혁신을 위해 모임을 해체하고 계파정치를 종식하겠다”고 밝히는 모습. 이들 모두 현재 이재명 대표의 총선 공천 등에 반발하며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다. 동아일보 DB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세 번째)이 당으로부터 공식 ‘컷오프’ 통보받은 2월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비명계 송갑석 의원, 홍영표 의원, 임 전 비서실장. 윤영찬 의원. 뉴스1
한 친문 관계자는 “친문 중에서도 이미 공천을 확정받은 한병도, 윤건영, 고민정 등은 자기 지역 선거 챙기기 바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소속 기동민 의원도 컷오프된 뒤 “같은 의혹으로 재판받고 있는 이수진(비례) 의원은 경선을 치를 수 있고 나는 왜 안 되냐”며 당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고요.
이게 그 시끄럽던 민주당이 모두가 입 다물고 조용해지는 ‘이재명당’이 되는 과정인가 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