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3.1% 뛰고 주가 사상최고치 日 중앙은행 총재도 “인플레 상태” ‘잃어버린 30년’ 터널 벗어날 채비 체감 경기-잠재성장률 여전히 바닥… 일각 “기시다 정치적 목적” 신중론
일본 정부가 23년 만에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이 3일 보도했다.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선 ‘만성적인 경기 침체’ 터널에서 빠져나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실물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날 분기점을 맞이했다는 평가가 많다.
● 기업 임금-물가 상승 “인플레 상태”
2001년 “디플레이션에 들어섰다”고 처음 인정했던 일본은 10년 넘게 마이너스 금리 등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펴 왔지만, 지금까지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경제학자는 ‘소비 침체→기업 악화→임금 감소→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더 끔찍한 악순환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는 봄철 대기업 임금협상인 춘투(春闘) 결과, 물가 전망 등을 지켜본 뒤 디플레이션 탈출을 천명할지 판단할 계획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및 각료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거나 경기 동향을 정리한 월례 경제보고에 기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디플레 탈출 선언을 위한 기초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총재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최근 물가 동향에 대해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 ‘지지율 끌어올리려는 목적’ 지적도
일각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경제 정책 성과를 토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디플레이션 탈피를 선언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교도통신은 “정부 내에는 이른 시기에 디플레이션 탈피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2000년대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뒤 곧바로 경기가 침체해 번번이 디플레이션 탈출에 실패한 것도 교훈으로 남아 있다.
최근 경기 훈풍이 근본적인 경제 체력 회복이 맞느냐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일본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진 경제 규모에서 독일에 뒤지며 세계 4위로 내려앉았다. 금융완화, 정부의 임금 상승 독려로 염원하던 ‘물가-임금 상승’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인구 감소, 노동 생산성 침체 등으로 일본의 잠재 성장률은 여전히 낮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