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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쇼츠보다 오랜 행복 주죠”

입력 | 2024-03-04 03:00:00

신간 ‘격정세계’ 펴낸 中소설가 찬쉐
북클럽 회원들의 격정적 사랑 다뤄




올 1월 새 장편소설 ‘격정세계’를 펴낸 중국 작가 찬쉐. 은행나무 제공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 도시 ‘멍청(蒙城)’. 소설가, 독자,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20, 30대 7명이 ‘비둘기 북클럽’에 모여 책을 읽는다. 그들은 정적인 활자를 누구보다 동적으로 읽어낸다. 울고 웃고, 때론 전율한다. 활자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현대인에게는 낯선 자극이다.

“문학은 노력한 만큼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휴대전화 쇼츠(짧은 동영상)가 가져다주는 즐거움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죠.”

올 1월 신간 ‘격정세계’(은행나무·사진)를 펴낸 중국 소설가 찬쉐(殘雪·7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의 필명 찬쉐는 ‘녹지 않고 남은 눈’이란 뜻으로 본명은 덩샤오화(鄧小華)다.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찬쉐는 실험적이고 강렬한 언어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영국 베팅 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가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그를 지목했다. 1953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모가 극우주의자로 몰려 온 가족이 노동교화소로 끌려갔다.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서양문학과 영어를 독학했고, 재봉사로 일하던 서른 살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찬쉐의 첫 장편소설 ‘황니가(黃泥街)’를 한국어로 옮긴 김태성 번역가는 “찬쉐는 유년 시절을 거치며 겪은 삶의 어려움과 부조리함을 몽환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라고 평했다.

신간은 북클럽 회원들이 얽히고 설키며 사랑하는 연애소설이다. 지리멸렬한 현대인의 삶에 문학과 사랑이 격정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영감은 몸과 마음이 발동하는 격정에서 나온다”며 “격정이 작품을 쓰는 동안 시종일관 나를 관통해 1년이 안 되는 시간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다소 난해했던 전작과 달리 신간은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작품세계의 문턱을 낮춘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일부러 낮췄다기보다 실험문학이라는 일관된 속성이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저력이 지금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들은 문학만큼 사랑에도 열정적이다. 독서에만 몰두하던 샤오쌍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대학 동창 헤이스에게 설렌다. 작품 속 같은 비둘기 북클럽 출신의 평론가 페이와 결혼한 작가 한마는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이상적인 반려자’”라고 말한다. 찬쉐는 “책에서 묘사하는 건 이상적인 사랑으로 육체를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승화시킨다”고 했다.




찬쉐는 매일 낮에는 철학책을, 밤에는 소설을 쓴다. 최근 쓰는 소설은 욕망에 관한 장편소설 ‘양서인(兩棲人·양서류 인간)’이다. 그는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격정세계’에 빠져들어 등장인물들과 함께 격정적인 삶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찬쉐와의 일문일답.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늘 지목되고 있는데 올해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은 예측하기 쉽지 않고 예측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문학적 이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확산 속도가 이미 크게 빨라졌다. 이번에 도박 베팅 사이트에서 나를 수상 후보 1위로 선정한 덕분에 중국 국내 언론에도 꽤 많이 보도됐다. 이러한 홍보가 내 문학 영향력을 확대한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나 역시 만족스럽다.”

―문학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생의 사건은 무엇인가.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일 것이다. 그 일로 나는 인간성의 심오함과 복잡함을 알게 되었다. 일흔여덟 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 일과의 관계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보다 더 훌륭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게 희망을 품고 오랜 시간 동안 하루같이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내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글을 쓸 때 구상이나 동기 없이 ‘자동적으로 글을 쓴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동적으로 현실세계와 유리된 글을 끌어내는 원천은 무엇인가.


“사전에 구상하지 않는 건 창작할 때 신체적 욕망의 충동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쓸 때는 중국인으로서의 실천적인 본능에 입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어느 정도 쓰다 보니 조금씩 자각하게 되었다. 서양의 고전 문학과 철학에 깊이 빠져들면서 내 작품이 특히 강한 정체성을 가질 뿐 아니라 작품의 형상이 창작 전체의 화환을 구성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통속적이고 표면적인 해석에 기대지 않고 세계 가운데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세계의 본질과 인간성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낯설지만 친숙한 모습으로 삶에 깊숙이 들어가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소수의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이런 작은 성공은 내게 한층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격정세계’를 쓸 때 내 안에 들끓는 욕망을 어렴풋이 느꼈는데 무엇보다 갈망하던 그것들을 하나의 통합적인 세계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 사는 ‘멍청’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삭막한 주인공 샤오쌍의 고향 ‘징청’과 특히 대조되는데, 공간의 대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

“‘멍청’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격정의 도시다. 그렇다고 그곳은 결단코 사상누각이 아니라 가능성의 도시다. 생활 속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면 적잖은 사람에게 이런 가능성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행동할 수 있게 독려하는 그런 이상적인 꿈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멍청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징청과 대비시켜 독자들로 두 종류의 삶 가운데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얽히고설키며 격정적인 사랑을 이어간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이고, 사랑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보는가.

“사랑은 육체와 영혼의 이중적인 끌림이다. 어디에 중점을 둘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묘사하는 건 이상적인 사랑으로 육체를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며, 우리가 발 딛고 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세상에서 사랑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동성애를 포함해서 자연 속 다른 것들에 대한 집착 역시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이유로 사랑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는 자신의 인간성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글에 몰입하고 이를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비둘기 북클럽 속 주인공들처럼 함께 감상을 나누는가, 아니면 침잠해 글을 이해하려 하는가.

“비둘기 북클럽 같은 것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가 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감성이 더없이 풍부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북클럽의 광경들은 자신을 각각으로 분열해서 연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이는 마음속 욕망을 자연스럽게 발휘한 것이다. 내 문학에서 등장인물들이 지닌 자질은 하나같이 자신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전부 나의 가능성이며, 하나로 합치면 문학의 소우주를 구축한다. 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건 작가가 가진 원시적인 힘이다. 이런 소설은 ‘독창성’의 경지를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서양식 사유의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본토의 자의식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북클럽 주인공들은 제목에 ‘X’가 포함된 소설을 읽으며 몰입한다.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기를 바라면서 소설을 집필했는지.

“X는 허구적 이상 소설로 미래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말하는 본질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본질에 가장 가까운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고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을 즐기고, 예술을 즐기며 이로 인해 창조의 격정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독자에게 바라는 바다.”

―기존작과 신간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예전에 쓴 소설은 ‘격정세계’보다 좀 더 추상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는 다소 힘에 부친다. 하지만 내 팬들은 그것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훗날 ‘암흑 대지 어머니의 선물’을 쓰자 가독성이 좋은 편이라 젊은 층에 사랑을 받았다. ‘격정세계’ 역시 비슷한 종류의 소설로 나는 늘 실험 중이다. 끊임없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고, 이는 내게 만족을 가져다준다.”

―소설에는 독자를 대표하는 샤오쌍, 소설가를 대표하는 한마, 비평가를 대표하는 페이 등이 등장한다. 이 세 요소가 어떻게 조화돼야 문학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고 보는가.


“세 가지는 문학의 기본 요소로 문학은 전파를 통해서 발전한다. 소설은 아무도 읽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를 알아챈 사람들은 문학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기 위해 독자와 비평가를 배출했다. 나는 실험 소설의 독자와 비평가는 필히 창조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설은 양자의 ‘감정이입(공감)’과 연기적 해석을 통해서만 이질적이지만 공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준 높은 요구다. 그래서 대도시 멍청에서 정상급 독자나 비평가가 열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학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생명력은 더없이 길다.”

―신간을 접할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독자들이 책 속 인물과 함께 춤추면서 진심 어린 즐거움을 얻었으면 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