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공군총장 등 4명 화상회의 대화 러 관영매체 보도… 獨, 도청 조사 러 메드베데프 “獨, 다시 원수 됐다” 타우루스, 우크라가 원했던 무기
러시아 본토와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잇는 유일한 다리인 ‘크림대교’. 케르치 해협 인근에 있는 이 다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는 러시아군 병력과 군수 물자가 이동하는 주요 통로다. 케르치=AP 뉴시스
러시아 관영 언론 ‘RT’의 마르가리타 시모냔 편집장이 “독일이 자체 개발한 타우루스 장거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크림대교 공격을 논의했다”는 독일군 고위 간부의 녹취를 공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즉각 “독일이 러시아의 원수가 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독일 당국은 러시아 측의 도청을 의심하며 유출 경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대반격을 앞둔 지난해 5월부터 독일에 장거리공대지유도탄 타우루스의 지원을 줄곧 요청했다. 하지만 미사일 지원이 러시아와의 직접 교전을 뜻할 수 있다는 독일의 우려로 아직 성사되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관영 언론이 해당 녹취를 공개한 것을 두고 미사일 지원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발발 후 줄곧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서방 주요국의 분열을 노리는 러시아의 노림수란 분석이 나온다.
● RT “獨, 타우루스로 크림대교 공격 논의”
시모냔 편집장은 1일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38분가량의 녹취를 텔레그램에 공개했다. 해당 녹취에서 독일의 잉고 게르하르츠 연방공군 참모총장, 프랑크 그레페 준장, 장교 2명 등 4명이 지난달 19일 화상회의 플랫폼 ‘웹엑스’에서 “크림대교는 매우 좁은 목표물이어서 타격하기 어렵지만 타우루스를 이용하면 가능하다”는 대화를 나눴다.
특히 게르하르츠 참모총장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에 타우루스 지원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자신이 장관에게 “(지원을 둘러싼 각종) 정치적, 기술적 문제를 브리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정권의 나팔수나 다름없는 관영 언론의 편집장이 해당 녹취를 공개한 것은 러시아 당국과의 사전 교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독일에 설명을 요구한다. 답을 회피하면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제2차 세계대전 등 양국이 벌인 각종 전쟁 등을 의식한 듯 “독일이 다시 원수로 변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 “러, 서방 주요국 분열 노려 폭로”
이에 독일 일각에서는 미사일 지원과 서방의 분열을 동시에 노리려는 러시아의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술’(재래식 무기와 해킹, 가짜뉴스 등 비재래식 무기를 결합한 전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방군 대령 출신인 우파 기독민주당의 로데리히 키제베터 의원은 “타우루스 지원을 저지하고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을 갈라놓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파병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발언한 뒤 독일이 서둘러 선을 긋는 등 서방이 균열 조짐을 보이는 상황을 노렸을 수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