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아마존 등 규제 사각 국내 판매 금지된 상품들 유통
지난해 9월 한강유역환경청은 니켈 검출 및 구리와 납 기준치 초과 등의 이유로 미국 제조사가 만든 갈색 문신 염료의 국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했다. 쿠팡과 11번가 등 국내 쇼핑 플랫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품이다. 그러나 중국 직구 업체 알리익스프레스(알리)의 애플리케이션(앱)에선 7개 묶음 제품이 3만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국내 유통 시장에 빠르게 침투한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직구 업체들이 유해 성분 검출로 국내 유통이 금지된 상품들까지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제품들이 국내에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3일 본보가 국내 유통이 금지된 181개 생활 화학제품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79개 제품(43.6%)이 현재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제품들은 환경부의 안전 검사에서 벤조(a)피렌, 니켈, 납, 구리 등 유해 성분이 기준치 이상 검출돼 수입 및 판매가 금지됐다. 문신 염료가 72개로 가장 많았고, 프린터 토너 3개, 충진제 2개, 접착제와 향초 각 1개씩 포함됐다.
유해 물품 中직구, 적발해도 차단 못해… “국민 건강 위협”
의사 처방 필요한 멜라토닌 성분
국내반입 금지… 직구론 쉽게 구해
정부 “외국 업체 차단할 방법없다”… 세관도 소규모 상품들 못 걸러내
“해외업체 불법 막을 法마련 급해”
국내반입 금지… 직구론 쉽게 구해
정부 “외국 업체 차단할 방법없다”… 세관도 소규모 상품들 못 걸러내
“해외업체 불법 막을 法마련 급해”
해외 직구 사이트들이 국내 시장 유통이 금지된 유해 물품까지 판매하면서 국민 건강과 안전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현행법상으로는 해외 직구 사이트들이 유해한 물건을 팔더라도 강제적으로 페이지를 삭제하거나 사이트를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초저가’를 앞세워 국내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유해 물품 유통 문제는 갈수록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일 환경부가 초록누리에 공시한 안전 관련 법률 위반 생활 화학제품은 총 4655개에 이른다. 이 중 국내에 수입된 적 있는 제품은 1028개다. 본보의 이번 조사는 이 중 실제로 유해 물질이 검출된 적이 있는 181개 제품만을 대상으로 했고, 결과적으로 79개 제품이 알리에서 팔리고 있었다. 이 중 문신 염료와 충진제, 향초는 테무에서도 팔리고 있었다. 미국 아마존 역시 문신 염료와 접착제, 프린터 토너, 충진제 등 수입 금지 제품 일부를 팔고 있다.
알리의 1월 기준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717만 명으로 작년 1월(337만 명) 대비 380만 명(112.8%)이 늘었다. 작년 8월 한국에 진출한 테무는 5개월 만에 MAU가 571만 명까지 증가했다. 쿠팡(2982만 명)에는 아직 뒤지지만 성장 속도로 볼 때 조만간 2위 11번가(759만 명)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로 반입이 금지된 의약품도 알리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두통이나 어지럼증 등 부작용을 이유로 멜라토닌을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 통관 금지 품목으로 지정했다. 알리에서는 ‘수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광고를 내세워 수면 패치 등 멜라토닌 함유 제품을 판매 중이다. 멜라토닌뿐 아니라 ‘5-하이드록시트립토판’(신경 억제), ‘몰약’(한약재) 등 국내 반입이 금지된 의약 성분도 알리에서는 검색만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지난해 일본에선 알리에서 판매하는 ‘점을 빼는 크림’을 직구로 구매해 얼굴에 발랐다가 피부가 괴사하는 등 심각한 피부 손상이 발생한 사례가 현지 소비자 보호 기관에 보고된 바 있다. 일본국민생활센터(NCAC)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심각한 피부·눈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의 강한 알칼리 성분을 가졌다.
직구 사이트를 통한 유해 제품 반입은 정부에서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 정부가 외국 업체를 대상으로 유해 제품 판매 페이지를 차단하도록 강제할 수 없어서다. 환경부는 한국인터넷광고재단이 적발한 판매 페이지를 한국온라인쇼핑협회를 통해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 회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당연히 판매자 처벌도 어렵다. 환경부 관계자는 “금지 제품 판매를 적발해도 국내 업체들은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으나 외국 업체는 차단 권고만 할 뿐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현재 해외 이커머스 업체를 통해 유해 제품이 국내에 불법 유통되는 걸 규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며 “국내 소비자 피해 발생 시 피해 구제 등 후속 조처를 할 수 있도록 조속히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